낙의재유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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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조선시대 때의 학자, 이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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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학자, 이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1책. 목활자본. 1910년 11세손 순혁(淳赫)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과 권말에 순혁의 후지(後識)가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연보와 시 32수, 서(書) 2편, 잡저 1편, 창의록(倡義錄) 1편, 권2는 부록으로 유사·행장·묘지명·유고봉환기(遺稿奉還記)·개사고유축문(改莎告由祝文)·후서(後敍)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가운데는 저자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팔공산 싸움에서 탄환을 맞고 신음하면서 그 감회를 읊은 칠언절구에 대해 채몽연(蔡蒙硯)·박충윤(朴忠胤) 등 58인이 쓴 화답시가 저자의 시와 함께 실려 있고, 끝에 「서공산시축후(書公山詩軸後)」가 붙어 있다.

잡저인 「임진일기」는 1592년 설날 아침에 괘를 뽑아보고 난리가 있을 것을 짐작해 활쏘기에 열중했다는 기록부터 1598년 12월 3일 동일원(董一元)이 마지막으로 사천(泗川)에서 왜군을 격파한 사실과 1599년 2월 다시 낙의재로 돌아온 사연 등 전후 8년에 걸친 주요사항들을 날짜별로 적은 것이다. 「제현일기(諸賢日記)」는 김응하(金應河)·최동보(崔東輔) 등 7인의 일기에서 저자에 관계된 기록들을 발췌해 수록한 것이다.

창의록은 「팔공산제의장회맹록(八公山諸義將會盟錄)」과 함께 당시 저자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모인 의병장들의 명단을 자(字)와 함께 지역별로 써놓은 것이다.

부록의 「유고봉환기」는 원래 저자의 유문이 집에는 하나도 없었는데, 저자가 죽은 지 200여년이 지나 우연한 기회에 어느 한 동자(童子)의 말을 듣고 장기현(長鬐縣)목장리(牧場里)의 과부 허씨 집에서 찾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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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양홍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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