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인보(仁父), 호는 송파(松坡).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남금(南琴)이며, 아버지는 진사 남익문(南益文)이다.
젊은 나이에 진사가 되었으며, 1487년(성종 18)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한림이 되었다. 1489년 대교(待敎)로서 관고대책(官考對策)에서 장원하였고, 그 뒤 1491년 정언, 1495년(연산군 1) 지평, 1497년 부응교를 지냈다.
이어서 예문관응교로서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때에 박영(朴英) 등이 장차 국사가 위태로울 것을 염려하여 함께 낙향할 것을 권하자,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여 있는데 자신만 편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정에 있으면서 연산군의 과실을 진언하였다.
이로 인하여 1504년 갑자사화에 수창자로 연루되어 파직, 1505년 처형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