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임 ()

노경임의 경암집 중 권수면
노경임의 경암집 중 권수면
유교
인물
조선 중기에, 지영해부사, 성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홍중(弘仲)
경암(敬菴)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9년(선조 2)
사망 연도
1620년(광해군 12)
본관
안강(安康)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지영해부사|성주목사
정의
조선 중기에, 지영해부사, 성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강(安康). 자는 홍중(弘仲), 호는 경암(敬菴). 아버지는 진사 노수성(盧守誠)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이조판서 장열(張烈)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과 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정자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돌아와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에 대항하였다. 1594년 사헌부지평이 되었고, 그 뒤 예조좌랑·강원도순안어사(江原道巡按御使)가 되어 삼척부사 홍인걸(洪仁傑)의 비행을 적발, 보고하였다.

그 뒤 다시 지평을 거쳐 예조정랑이 되었고,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이 되어 삼남지방(三南地方)을 순찰하면서 임기응변으로 일을 잘 처리하여 그의 신임을 얻었으며, 1597년 이원익의 지시를 받고 올린 전쟁 상황의 상세한 보고로 선조의 신임을 얻어 교리로 임명되었다.

1598년 사간원헌납·종부시전적(宗簿寺典籍)에 제수되었지만 부임하지 않다가 그 뒤 지영해부사(知寧海府事)·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에 앞서 스승 장현광의 심부름으로 정인홍(鄭仁弘)을 만나보고 돌아와 대단히 간사한 인물이라고 말했던 일이 뒷날 정인홍에게 알려져서 무고한 탄핵을 받고 성주목사에서 파직되었다.

그 뒤 낙동강변에 은거하고 여생을 보내다가 선산(善山)에서 별세하였다. 승정원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경암집(敬菴集)』 7권이 있다.

참고문헌

『경암집(敬菴集)』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선조실록(宣祖實錄)』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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