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폭. 세로 120㎝, 가로 95㎝. 비단 바탕에 채색. 개인 소장.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관찰사로 있던 1537년(중종 32)에 동화사의 화승인 옥준상인(玉峻上人)이라는 사람이 그렸다고 한다.
이현보의 오른손에 쥐고 있는 불자와 경상(經床)이 등장하고 금은니의 화려한 채색이 사용되어 불화 요소가 엿보인다. 이 후 1827년(순조 27)에 훼손을 우려한 후손들이 이재관에게 모사본을 제작하도록 하였다.
이 초상화는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의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으로서 서안(書案)을 앞에 둔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위가 뾰족한 평량자(平涼子: 패랭이)를 쓰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입제(笠制)가 성종대에는 위가 둥글고 테가 넓었던 것이 연산군대에 와서 위가 뾰족해진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는 입제의 변천에 잘 부합된다. 이 초상화는 복제면에서도 특이하다. 흉배를 착용한 공복이 아니라 담홍포(淡紅袍)에 서대(犀帶)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손이 나타나지 않는 데 반하여, 여기에서는 한 손은 불자(拂子)를, 또 한 손은 서대를 잡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앞의 서안 위에는 펼쳐진 책과 벼룻집이 놓여 있다.
그리고 서안 밑으로는 검은 가죽신[黑皮鞋]이 보인다. 이처럼 특이한 상용 형식에도 불구하고 화법은 안면에서부터 옷주름까지 모두 구륵(鉤勒)으로 처리하여 상당한 고식(古式)을 보인다.
이 초상화에서 사용된 필선은 태세(太細)가 별로 없는 단조로운 선이다. 그래서 전신(傳神)의 묘를 찾아보기에는 균형이 잡히지 않은 부분이 많아 다분히 만화적(漫畫的)인 의취가 엿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이현보의 곧은 기개와 활달한 성품이 잘 묘사되었다. 16세기에 제작된 초상화가 희귀한 현시점에서 볼 때 자료상의 가치가 주목되는 초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