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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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유물
삼국시대의 갑옷.
이칭
이칭
판갑, 흉개(胸鎧), 신갑(身甲)
정의
삼국시대의 갑옷.
개설

단갑이라는 용어는 본래 일본의『동대사헌물장(東大寺獻物帳)』에 단갑(短甲)·괘갑(棨甲)이라고 기록된 데서 유래한 외래용어로, 기존에는 한일 양국의 학술용어로서 정착되고 있었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판갑(板甲)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신갑(身甲)이라 칭하고 있다.

내용

괘갑(찰갑)이 기병용(騎兵用) 갑옷임에 비해 판갑은 원래는 보병용 갑옷이었다. 판갑은 후동부(後胴部)가 넓고 높아 어깨를 덮을 정도임에 비해, 전동부(前胴部)는 좁고 짧아 어깨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하단은 허리의 상단에 이를 정도의 짧은 갑옷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판갑은 모두 철제이다. 이를 구성하는 철판의 형태에 의해 삼각판식(三角板式)·종방판식(縱方板式)·횡방판식(橫方板式) 등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결합기법상 결합시 사용된 재료가 가죽끈인지, 못인지에 의해 혁철식(革綴式)과 원두정고정식(圓頭釘固定式)으로 양별된다. 혁철식이 먼저 나타나며, 원두정고정식은 5세기 이후에 채용된 새로운 결합기법으로 판명되어 있다.

참고로 찰갑이 고구려계의 토착계 갑주로 만곡종장판주·마구와 관련시켜 기마용 갑주로 지배계층의 방어구로 착용되었고, 판갑은 신라·가야계의 토착계 갑주로 차양주, 충각주와 함께 비기마용으로 비지배계층의 방어구로 착용되었다. 그러나 5세기 초 기마전술이 남부지방에 도입되면서 마구류, 금공품 등과 함께 전파되었으나 지역에 따라 출현시기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백제의 고분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고, 신라·가야지역의 고분에서만 출토되었다. 동형(同形)의 것이 거의 같은 시기의 일본고분에서도 다량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판갑은 경주 구정동목곽묘에서 출토된 비교적 간단한 구조의 종방판혁철판갑(縱方板革綴板甲)이다. 반출유물의 검토에서 4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동래 복천동고분군·부산 연산동고분·함양 상백리고분·고령 지산동고분·합천 옥전고분 등에서 종방판원두정고정판갑·횡방판원두정고정판갑·삼각판원두정고정판갑·삼각판혁철판갑 등 다양한 형식의 판갑이 출토되었다.

또 김해지방 출토로 전해지는 종방판원두정고정판갑 2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5세기대의 것으로, 가야의 고지(故地), 또는 가야와 가까운 지역에서 집중 출토되는 것이 특징이다. 경주의 5세기대 고분에서는 출토 예가 없다.

그런데 일본의 연구자 중에서 우리 나라 5세기대의 판갑은 일본제이며, 더 나아가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실재를 증명하는 자료로 간주하는 주장이 있다.

그 근거로는 이 무렵의 판갑이 가야지역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는 점, 횡방판·삼각판 판갑들이 일본의 5세기대 고분 출토의 판갑과 비슷하다는 점, 이러한 판갑이 일본고분에서 출토량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근래 제작기술적인 측면에서의 검토와 당시 한반도 남부의 갑옷분류작업을 통해 판갑은 가야 고유의 무장구(武裝具)이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도 매우 성행되었다는 견해도 자주 나오고 있다.

의의와 평가

판갑은 고대의 문화적·기술적인 수준의 구명뿐만 아니라, 당시의 군사조직과 전술, 특정 정치세력의 팽창 등의 연구를 비롯한 고대사 해명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 고대 갑옷과 투구의 연구」(장경숙, 동아대 박사학위논문, 2006)
『한국군복의 변천사 연구』(김정자, 민속원, 1998)
『한국(韓國)의 군복식발달사(軍服飾發達史)』 Ⅰ-고대(古代)-독립운동기(獨立運動期)-(국방군사연구소(國防軍史硏究所), 1997)
「고대한일갑주단상(古代韓日甲胄斷想)」(신경철, 『윤무병박사회갑기념논총(尹武炳博士回甲紀念論叢)』, 1984)
『동래복천동고분군(東萊福泉洞古墳群) Ⅰ』(정징원·신경철, 부산대학교박물관, 1983)
『고령지산동고분군(高靈池山洞古墳群)』(김종철, 계명대학교박물관, 1982)
「古墳時代短甲の流れ」(小林行雄, 『帝塚山考古學硏究所設立記念 日·韓古代文化の流れ』, 1982)
「南部朝鮮出土の鐵製鋲留短甲」(穴澤和光·馬目順一郎, 『朝鮮學報』76,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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