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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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암리 출토 도관
공주 마암리 출토 도관
고려시대사
개념
고려시대에 점토를 곱게 수비하여 기와처럼 구워서 만든 관. 와관.
이칭
이칭
와관(瓦棺)
정의
고려시대에 점토를 곱게 수비하여 기와처럼 구워서 만든 관. 와관.
개설

도관(陶棺)은 점토를 수비(水飛: 물에 휘저어 잡것을 없앰)하여 구워서 만든 고려시대의 널로, 중국 용어이고, 일본에서는 ‘와관(瓦棺)’이라 칭한다. 대체로 나무관보다 작게 만들었다. 동양에서 도관을 처음 사용한 것은 중국 한나라 때이다. 쓰촨성〔四川省〕에서는 이것이 절벽을 굴처럼 파서 만든 애묘(崖墓)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청두시〔成都市〕톈후이산〔天廻山〕의 한 애묘 속에서 11개의 도관이 발견된 일이 있다. 크기는 길이 1.9m, 너비 48㎝, 높이 75㎝, 두께 5㎝이고, 피죽같은 뚜껑을 덮었다. 또한 시안시〔西安市〕 바이지아커우〔白家口〕와 뤄양〔洛陽〕젠빈〔澗濱〕의 토광묘에서도 발견된 일이 있다. 전자에는 유아의 뼈가 들어 있었고, 후자는 뚜껑으로 전(塼) 3매를 덮었다. 한나라 외의 것으로는 서진(西晉)의 것이 있는데 길이가 1m 정도의 소형이었다.

일본에서는 여러 모양의 와관이 돌방무덤에서 발견된다. 긴키〔近畿〕와 주고쿠〔中國〕지방에서 많이 발견된다. 형식에는 거북등형〔龜甲形〕과 지붕형〔屋根形〕이 있다. 전자는 적갈색이고 후자는 흑회색이 많다. 그리고 밑에는 원통형(圓筒形)의 다리를 붙인 것이 특징이다.

내용

우리나라의 도관은 지금까지 단 하나의 예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1957년 4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에서 화초를 채취하던 인부에 의해 우연히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이 도관은 정선된 바탕흙〔胎土〕을 사용해 700℃ 정도에서 구웠고, 흑회색을 띠고 있다. 평면은 장방형인데 네 모서리를 죽인 원방형(圓方形)으로, 한 쪽 너비를 약간 넓게 하여 상관하촉(上寬下促)을 만들고, 지붕도 얄팍하게 상자 뚜껑처럼 하였다. 그리고 도관신(陶棺身)의 아가리 부분은 1.5㎝ 가량 안으로 넣어 위 뚜껑이 꼭 들어맞게 하였다. 관 표면이나 밑에 아무런 문양이나 장식 또는 다리를 만들지 않아, 간단한 목관과 같은 모양이다. 크기는 길이 68.5㎝, 너비 26.5∼28.5㎝, 높이 19.5㎝이다.

이 마암리 출토 도관은 형태나 질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측되고 있다. 고려시대는 강력한 불교의 영향 때문에 화장법이 크게 유행하였다. 그리고 장골용기(藏骨容器)로는 소형 목관 모양의 슬레이트제 조립식 돌널〔石棺〕을 사용하였다. 뼈단지〔骨壺〕대신에 관을 사용하게 된 것은 북방의 요나라나 원나라 풍속의 영향으로 보인다.

돌널은 지금까지 많이 발견되었으나 도관은 이것이 처음인데, 당시는 상당한 수에 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대체로 연질이기 때문에 도굴 때 파괴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고려 시대뿐만 아니라 불교식 화장묘가 널리 채용되었던 삼국시대 후기나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에서도 여기와 같은 화장용 도관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2002년에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유적에서 백제시대 도관묘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또한 한나라 때와 같이 시체를 바로 넣을 수 있는 등신대(等身大)의 관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도관의 사용은 불교식 장례인 화장의 수용과 당시 묘제의 변천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례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익산 원수리 유적」(호남문화재연구원, 『금마-연무대간 도로 확·포장공사구간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보고』, 2002)
「공주 출토의 도관」(김영배,『고고미술』1-5, 1960)
「一九五五年洛阻澗西區小型漢墓發掘報告」(趙靑云·劉東亞, 『考古學報』, 1959)
「成都天廻山崖墓淸理記」(劉志遠, 『考古學報』, 1958)
『圖解考古學辭典』(水野淸一·小林行雄, 東京 創元社,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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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강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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