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정운 ()

동국정운 권1 / 건국대학교 박물관
동국정운 권1 / 건국대학교 박물관
언어·문자
문헌
1448년 세종의 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간행된 운서.
정의
1448년 세종의 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간행된 운서.
개설

1448년(세종 30)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 등이 세종의 명으로 편찬하여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韻書)이다.

『동국정운』은 중국의 운서인 『홍무정운(洪武正韻)』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편찬/발간 경위

세종의 언어정책의 일환으로 당시 혼란상태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1447년(세종 29) 편찬이 완성되었고, 이듬해인 1448년 10월에 간행되었다.

그러나 편찬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실록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다만 세종조의 운서편찬사업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종조의 중요한 운서편찬사업으로는 『사성통고(四聲通攷)』·『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동국정운』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1444년 2월부터 동시에 착수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은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그 이듬해 2월 14일에 의사청(議事廳)에 물어 훈민정음으로써 『운회(韻會)』를 번역하게 하였다. 이 『운회』는 원(元)나라의 웅충(熊忠)이 고쳐서 다시 지은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를 뜻하는데, 이 번역본이 나왔다는 기록은 없다.

『동국정운』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운회』의 번역본을 탈바꿈시킨 것이 『동국정운』일 가능성이 있다. 즉, 『운회』의 반절음을 우리나라 음으로 번역하여 훈민정음으로 표음하고, 훈민정음의 초성 차례에 따라 글자들의 배열을 바꾸어놓은 것이 『동국정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열 순서는 『동국정운』이 작시(作詩) 위주의 운서가 아니라 심음(審音: 음을 탐구함.) 위주의 운서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에 비하여 『홍무정운역훈』이나 『사성통고』는 작시용이므로, 세종조의 운서편찬사업이 작시용과 심음용의 이원화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지적 사항

6권 6책. 활자본.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것(간송미술관 소장, 권1·권6)과 1972년 국보로 지정된 것(건국대학교박물관 소장, 완질)이 있다.

『동국정운』의 편찬에 참여한 사람은 신숙주·최항·성삼문(成三問)·박팽년·이개(李塏)·강희안(姜希顔)·이현로(李賢老)·조변안(曺變安)·김증(金曾) 등의 9인인데, 이들의 분담업무는 감장(監掌)은 동궁(東宮), 그 보좌로는 진양대군(晉陽大君)과 안평대군(安平大君), 주무(主務)는 신숙주와 성삼문, 우리나라 한자음의 사정은 최항과 박팽년, 중국음에 대한 자문은 조변안과 김증, 교정과 정리는 강희안이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동국정운』은 신숙주가 쓴 서문만이 전해 오다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첫째 권과 여섯째 권의 두 책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간송문고에 있다. 그뒤 중종 때의 문신인 심언광(沈彦光)의 집안에 전해 오던 6권 6책의 전질이 1972년에 강릉 심교만(沈敎萬)의 집에서 발견되어 현재 건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간송문고본은 전 6권 가운데 두 책만이 남아 있으나, 권수에 선사지기(宣賜之記)가 날인되어 있고 제목이 있는 표지도 본래의 것으로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판심제(版心題)는 ‘正韻(정운)’이라고 되어 있다. 활자 중 본문의 한글과 한자 대자(大字)는 목활자(木活字)이고, 소자(小字)와 서문의 대자는 초주(初鑄) 갑인자(甲寅字)이다.

자체(字體)는 본문 대자가 수양대군의 글씨와 비슷하고, 묵개(墨蓋)의 음각한 글이 안평대군의 글씨와 비슷하나 편찬자의 한 사람인 강희안의 필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건국대학교 소장본은 간송문고본과 같은 인쇄본인데, 선장본(線裝本)을 포배장(包背裝)으로 개장하면서 책의 위와 아래를 약간 절단하였고, ‘선사지기’가 없으며, 제전(題箋) 아래에 차례를 나타내는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묵서(墨書)로 가필한 점이 다르다.

간송미술관 소장본 『동국정운』은 1958년 통문관(通文館)에서 영인하였고, 건국대학교박물관 소장본은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1973년에 영인하였다.

내용

신숙주의 서문에 의하면 『동국정운』의 편찬은 세종이 지시한 4대기본방침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기본방침은, 첫째 민간(民間)에 쓰이는 관습을 널리 채택할 것, 둘째 옛날부터 전해 오는 서적을 널리 상고할 것, 셋째 한 글자가 여러 개의 음으로 쓰일 때는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을 기준으로 할 것, 넷째 옛날부터 전해 오는 협운(協韻 : 어떤 음운의 글자가 때로는 다른 음운과 통용되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고려할 것 등이었다.

이 방침에 따라, ① 91운 23자모의 체계를 세우고, ② 반절(反切) 대신에 훈민정음으로써 표음(表音)하고, ③ ㄷ입성(入聲)은 민간의 발음에 따라 ㄹ로 바꾸되, 입성의 자질을 살리기 위하여 ‘ㅭ’과 같이 표기하였다.

권1의 권두에 신숙주의 ‘동국정운서(東國正韻序)’와 ‘동국정운목록(東國正韻目錄)’이 있고 그 다음에 본문이 있다. 이 본문은 권6에까지 이어지는데, 각 권은 26운목(韻目)의 배열 차례에 따라 나뉘어 있다.

본문은 먼저 운목을 운류별로 표시한 뒤 행을 바꾸어 자모(字母)를 음각(陰刻)으로써 표기하였고, 자모 바로 밑에는 훈민정음으로 음을 표시하였다. 한 자모 아래에는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의 순서로 그 자모에 속하는 한자들을 배열하였다.

각 글자의 뜻은 풀이하지 않았으며, 한 글자가 여러 음을 가질 경우 그 글자 바로 밑에 세주(細註)를 붙였다. 『동국정운』의 편운체계는 신숙주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91운 23자모로 되어 있다. 이 편운체계는 운서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골격이 되는 동시에 당시의 국어 음운체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체계는 당시의 우리나라 한자음을 명확히 구현하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송대(宋代) 등운학파(等韻學派)들의 이론체계나 명대(明代) 『홍무정운』의 언어정책을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 다분히 현실과 맞지 않은 인위적인 요소가 작용하게 되었다. 91운의 차례와 내용은 위의 [표 1] 과 같다.

[표 1] 의 분운(分韻)과 차례는 중국의 어떤 운서와도 일치하지 않는 독특한 것이다. 분운의 유형은 훈민정음의 자질에 따르고, 차례도 훈민정음의 종성과 중성에 따른 것이다. 이 표를 종성과 중성의 자질과 차례에 따라 재구하면 위의 [표 2] 와 같다.

내부의 분운으로서, ·는 ㅡ·ㅣ·ㆎ ·ㅢ를, ㅚ는 ㅟ·ㆌ를, ㅐ는 ㅖ·ㅙ·ㆋ를, ㅗ는 ㅜ·ㅛ·ㅠ를, ㅏ는 ㅓ·ㅑ·ㅕ·ㅘ·ㅝ·ㆊ를 포함한다. 이것은 15운섭(韻攝)으로 통합할 수 있는데 등운학의 16운섭과 대조하면 아래 [표 3] 과 같다(윗줄은 동국정운, 아랫줄은 16운섭이다.)

성모를 나타내는 기호자(記號字)를 자모(字母)라 한다. 『동국정운』의 자모는 23개로 되어 있는데, 이는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 내역은 아래의 [표 4] 와 같다. 자모자는 『동국정운』에서 실제로 나타낸 음에서 취한 것이다. 따라서 송대 등운학의 자모자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이 체계는 등운학의 36자모도에서 설두음(舌頭音)과 설상음(舌上音), 순중음(脣重音)과 순경음(脣輕音), 치두음(齒頭音)과 정치음(正齒音)을 통합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기준으로 한 것이나, 청탁에서 전탁음(全濁音 : ㄲ, ㄸ, ㅃ, ㅆ, ㅉ, ○ 등)을 분리, 독립시킨 것은 당시 국어의 현실음과 어긋나는 것이다. 이처럼 청탁음을 분리한 것은 청탁의 대립이 있어야 한다는 등운학의 음운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인위적인 조작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業(ㆁ), 挹(ㆆ)·欲(ㅇ)’의 3개 자모를 분리, 독립시킨 점도 당대의 현실음과 동떨어진 것으로 인위적 조작의 한 단면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동국정운』의 한자음은 주로 불경언해(佛經諺解)에서만 주음(注音)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6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그 사용이 전면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국정운』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 『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제자(制字) 배경이나 음운체계, 그리고 각 자모의 음가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참고문헌

『홍무정운역훈의 신연구』(박병채,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3)
『홍무정운역훈의 연구』(정연찬, 일조각, 1972)
『동국정운연구』(유창균, 형설출판사, 1966)
『정음발달사』(홍기문, 서울신문사출판국, 1946)
「동국정운연구」(이동림, 동국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70)
「동국정운식 한자음연구」(남광우, 『한국연구총서』6, 1966)
「홍무정운역훈의 연구」(이숭녕, 『진단학보』20, 1959)
「동국정운초성고」(김철헌, 『국어국문학』19, 1959)
「세종의 언어정책에 관한 연구」(이숭녕, 『아세아연구』12, 1958)
「再び東國正韻に就いて」(河野六郎, 『朝鮮學報』14, 1959)
「東國正韻と洪武正韻譯訓に就いて」(河野六郎, 『東洋學報』27·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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