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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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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송준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0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송준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0년에 간행한 시문집.
서지적 사항

48권 26책(본집 28권 14책, 별집 8권 4책, 속집 12권 8책). 목판본. 1929년상주흥암서원(興巖書院)에서 중간되었다.

내용

이 책은 원래 1680년(숙종 6) 왕명에 의해 송시열(宋時烈)의 교열을 거쳐 예문관에서 최초로 간행되었고, 1768(영조 44) 그의 현손 명흠(明欽)이 여러 사림들의 도움을 얻어 교정하고 초록하여 중간하였다.

속집은 1910년(융희 4)에 출간된 것으로, 1847년(헌종 13) 추편하였던 습유(拾遺) 8권 4책을 다시 산정(刪定)하고, 남은 유고초본(遺稿草本)을 정리해 원집과 합간하게 된 것이다. 속집 말미에 민병승(閔丙承)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권1∼6에 소·차(箚) 140편, 권7은 계사(啓辭) 37편, 서계(書啓) 3편, 헌의(獻議) 18편, 권8∼18은 서(書) 651편, 권19는 제문 22편, 축문 29편, 권20은 잡저 14편, 기 2편, 제발(題跋) 10편, 권21은 비 2편, 묘갈명 2편, 묘표 18편, 묘지 5편, 권22∼26은 행장 14편, 시장(諡狀) 4편, 권27은 연보, 권28은 사(詞) 2편, 시 70수, 속집으로 권1은 소차 31편, 계사 3편, 서계 2편, 권2·3은 서(書) 213편, 권4는 제문 15편, 축문 3편, 서(序) 1편, 행장 1편, 권5는 시 56수, 권6∼12는 부록으로 연보·전(傳)·기·사제문(賜祭文)·제문·축문·소·유사·서(序)·제가기술잡록(諸家記述雜錄)·원향록(院享錄)·문인록(門人錄), 별집으로 권1∼7은 경연일기(經筵日記), 권7·8은 부록으로 유사·묘지문·음기(陰記) 등으로 편집되어 있다.

이 중 소·차는 사직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나, 예제(禮制)에 관한 이론과 당쟁에 관한 자료가 많다. <진정사직겸진소회소 陳情辭職兼陳所懷疏>·<사진선소 辭進善疏> 등은 소현세자의 죽음을 애도한 상소와 효종이 즉위한 시기에 올린 글이다. <시학후론의주차오잉위인구소 視學後論儀注差誤仍爲引咎疏>·<승명논학제차 承命論學制箚> 등은 예에 관한 견해와 학제에 관한 내용으로, 교육사의 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사대사헌겸진소회차 辭大司憲兼陳所懷箚>·<승명논허목상복소차 承命論許穆喪服疏箚>등은 1659년(효종 10) 현종사복초(顯宗嗣服初)에 복상(服喪) 문제로 논란이 많았던, 이른바 기해복제론(己亥服制論)과 관계된 예론이다.

효종이 죽자 그의 모후 조대비(趙大妃)의 복상은 서인 송시열·송준길의 뜻에 따라 기년(朞年)으로 정해졌고, 곧이어 현종이 즉위하였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1660년 남인 허목(許穆)·윤휴(尹鑴) 등이 조대비의 복상에 대해 3년설을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서인측은, 효종은 인조의 둘째 왕자이므로 계모후인 조대비의 복상에 대해서는 기년설이 옳다고 반박하였다. 남인측은 이에 대해 다시 반박해, 효종은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나 다름없으니 3년설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예송이 정쟁으로 발전하여 가자 송준길은 많은 예설을 고증해 기년설을 확고히 주장하였다.

<논시사차 論時事箚>·<청유판중추송시열차 請留判中樞宋時烈箚>·<사헌직겸논군덕소 辭憲職兼論君德疏> 등은 노론의 한 지도자로서 송시열과 함께 국정에 참여해 당시의 시무책(時務策)을 임금에게 올린 글이다.

<논보양원자차 論輔養元子箚>는 원자보양(元子輔養)에 대한 건의인데, 이 건의로 인해 첫 번째 보양관(輔養官)에 취임하였다.

<진정소 陳情疏>·<진사겸사직명소 陳謝兼辭職名疏>·<대죄소 待罪疏> 등은 30년간 임금의 은지(恩旨)를 받으면서도 의리에 맞지 않으면 벼슬에 나가지 않아 일생 동안 조정에 머문 날은 단 1년 동안에 불과했던 그의 출처관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계 에는 <양사청원찬김자점계 兩司請遠竄金自點啓>는 청나라에 아부하여 영달을 꾀하던 김자점을 탄핵한 글이다. 헌의 가운데 <인평대군상친림사제의주의 麟坪大君喪親臨賜祭儀注議>·<국휼시백관복제의 國恤時百官服制議>·<능호혐피의 陵號嫌避議>·<국장후행제시선위문안당부의 國葬後行祭時先爲問安當否議>·<대왕대비전복제의 大王大妃殿服制議> 등은 임진왜란 이후 다방면에 걸쳐 나타난 예제(禮制)의 문란을 정비하려는 글이다.

서(書)의 내용은 경전의 해석·성리설 등 다양한 주제를 수록하고 있는데, 주로 예설에 관한 문답이 많다. 서신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보면, 그의 스승 김장생(金長生)을 비롯해, 김상헌(金尙憲)·김집(金集)·조익(趙翼)·강석기(姜碩期)·정홍명(鄭弘溟)·정태화(鄭太和)·신익전(申翊全)·송시열(宋時烈)·권지(權趾)·윤순거(尹舜擧)·김수창(金壽昌)·윤선거(尹宣擧)·나성두(羅星斗)·이동직(李東稷)·이홍윤(李弘潤)·홍주세(洪柱世)·이단상(李端相)·이단하(李端夏)·김수항(金壽恒)·민정중(閔鼎重)·민유중(閔維重)·남구만(南九萬)·윤증(尹拯)·박세채(朴世采)·이희조(李喜朝)·정경식(鄭景式) 등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한 사류들이다.

이 서에 수록된 자료를 통해 그의 사승 관계와 교우 관계의 폭을 짐작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의 학적 성격이나, 학술사적 위치를 알 수 있다. 특히 정경식·정경화(鄭景華) 형제에게 보낸 서신 속에는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과 이이(李珥)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비교 검토하고 이이의 학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제문에는 김장생·김상헌·김집·정경세(鄭經世) 등의 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에는 <을해정월초삼일역서제사 乙亥正月初三日曆書題辭>·<회덕충절사봉안죽창이공야은송공통문 懷德忠節祠奉安竹窓李公野隱宋公通文>·<사계선생묘도수비시통문 沙溪先生墓道樹碑時通文> 등으로 주로 그의 학맥과 관련된 글이다.

별집 가운데 <경연일기>는 경연강의에서 행한 강설 내용을 수록하고 있어, 그의 경전이해 태도를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전례(典禮)에 관한 논술이 많고, 특히 효종의 죽음에 조대비가 효종을 위해 상복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 하는 복상문제에 대한 문헌으로서 당시의 예송과 당쟁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규장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으며, 1986년에 성균관에서 간행한 영인본이 있다.

참고문헌

『송자대전(宋子大全)』
『남계집(南溪集)』(박세채)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김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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