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환봉사 ()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시대 문신 · 학자 안방준이 조헌이 왕에게 올린 상소문을 모아 엮은 등록.
목차
정의
조선시대 문신 · 학자 안방준이 조헌이 왕에게 올린 상소문을 모아 엮은 등록.
서지적 사항

1권 1책. 인본.

내용

이 책은 조헌이 1574년(선조 7)에 상사(上使) 박희립(朴希立), 서장관(書狀官) 허봉(許封)과 같이 질정관(質正官)으로서 명나라 신종(神宗)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성절사행(聖節使行)으로 중국에 다녀와서 작성한 것이다.

그 내용은 그가 중국에서 본 문물 제도 중에서 우리 나라도 실시했으면 하는 것을 모은 것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귀국하자마자 올린 8조의 상소이다. 여기서는 성묘(聖廟)의 배향, 내외의 서관개혁(庶官改革), 귀·천인의 의관, 식품과 연음(宴飮), 사부(士夫)의 읍양(揖讓 : 읍하여 자기를 낮춤), 사생(師生) 사이의 접례(接禮), 향려(鄕閭)의 습속, 군사(軍師)의 기율 등 일상 사무 범절에 관해 명의 제도를 소개하면서 조선의 고쳐야 할 제도를 진언하였다.

이 8조의 소는 질정관으로서의 본래의 소임인 질정록(質正錄) 1편과 함께 선조에게 올려졌다. 그러나 풍기와 습속이 다른 점을 헤아리지 않고 억지로 행하려 한다면 해괴한 습속이 되고 말 것이라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또 하나는 위와 같은 사정 때문에 미처 올리기를 보류하였던 10조의 상소인데 위 상소와 거의 같은 때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격천(格天)의 성의, 추본(推本)의 효도, 능침(陵寢)의 제도, 제사의 예절, 경연(經筵)의 규례, 시조(視朝)하는 의식, 간언을 듣는 법, 취인(取人)하는 방법 등을 거론하였다.

이 밖에 음식의 절제, 알맞게 하는 희름(餼廩), 명령은 엄하게 할 것, 인구의 번식, 사졸(士卒)의 선발, 조련(操鍊)을 부지런히 할 것, 성대(城臺)를 견고히 할 것, 출척(黜陟)을 분명히 할 것 등을 거론했는데, 모두 왕정의 근본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

당시 사행이 성절사행이었음은 표면적인 것이었다. 오히려 종계변무(宗系辯誣)의 일을 주선한다거나 조선의 국내 문제, 특히 사상을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책이었기 때문에 이 봉사도 그에 대한 저자의 정견을 실은 것이다.

한편, 일상 사무에 대한 것은 올리고 먼 장래를 내다본 내용, 즉 명나라의 제도를 극복하고 계속해 삼대(三代)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한 왕정에 관한 것을 올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조선의 문물 제도를 개혁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끝에는 안방준(安邦俊)의 발문이 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
『국역연행록선집』 Ⅱ(민족문화추진회, 1976)
집필자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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