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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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치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6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치복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96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896년 박치복의 아들 박희선(朴熙善)과 문인 김진호(金鎭祜)·이정모(李正模) 등이 처음 13권 6책을 목활자로 편집·간행하였다. 그 뒤 1925년 손자 박영철(朴永喆)과 조카 박정선(朴正善) 등이 빠진 부분을 대폭 보완해 본집 16권 8책, 부록 2권 1책, 목록 1권 1책을 편집하여 목판본으로 중간하였다. 초간본과 중간본 모두 서문은 없고, 초간본의 발문은 김진호·이정모·박상태(朴相台), 중간본의 발문은 조한원(趙漢元)이 썼다.

서지적 사항

초간본 13권 6책, 중간본 19권 10책. 목활자본(초간본)·목판본(중간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3에 시, 권4에 소(疏), 권5∼7에 서(書), 권8∼10에 잡저, 권11에 서(序), 권12에 기(記)·발(跋), 권13에 잠(箴)·명(銘)·전(箋), 권14에 비명·묘갈, 권15에 묘표·묘지, 권16에 행장·행록·전(傳)·유사가 실려 있고, 부록 권1에 저자의 연보, 권2에 저자의 행장·묘지·묘갈 및 문집고성문(文集告成文)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은 저자의 문학세계를 보여주는 시, 철학사상을 담고 있는 잡저와 서(書), 정치사상을 말해주는 상소·책(策)·논(論) 등이다.

시는 「백운동십팔곡(白雲洞十八曲)」과 같은 서경시, 사우(師友)·문인들과 화답한 차운시(次韻詩) 및 만시(挽詩) 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청아하고 고상한 품격을 보이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시는 권3에 수록된 「대동속악부(大東續樂府)」 28편이다. 이는 저자가 아악(雅樂)의 부흥을 의도해 지은 것인데, 그의 시와 음률에 대한 특별한 조예를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종해가(從海家)」·「정조선(定朝鮮)」·「해주서(海州黍)」·「대보단(大報壇)」 등 조선조의 건국에서부터 숙종 때까지 있었던 중요 사건과 미담 28건을 소재로 아악의 가사를 지은 것인데, 매 편의 서두에 해설을 붙여 놓았다.

그의 철학사상은 잡저의 「명덕변(明德辨)」·「태극변(太極辨)」·「독서수차(讀書隨箚)」·「위학설(爲學說)」·「입지설(立志說)」 등 소논문들과 유치명·곽종석(郭鍾錫)·김진호 등 여러 사우·문인들과 주고받은 서한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제시된 저자의 유교경전 해석이나 태극·이기(理氣)·심성(心性)에 관한 성리설들은 대부분 주자(朱子)와 이황(李滉) 및 영남 주리파의 정통학설을 추종한 것이지만, 그 나름대로 체계화된 주견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정치사상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1888년에 사회 현안문제의 개혁을 논한 「상시폐소(上時弊疏)」이다. 여기서 그는 모든 정치의 근원이 국왕의 일심(一心)임을 강조하고, 왕이 성현의 학문에 힘써 도덕성을 확립할 것, 관리들의 기강과 선비들의 습성을 바로 잡을 것, 사치를 금지할 것, 뇌물을 근절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응지대삼정책(應旨對三政策)」에서도 표명되고 있다. 이 글은 1862년(철종 13) 조정에서 임술민란을 무마하기 위하여 그 대책을 묻는 구언(求言)에 응해 지어 올린 것이다. 여기서 그는 전세·군역·환곡 등 삼정(三政)의 폐단을 시정할 구체적인 개혁안 건의보다는 유교적 도덕정치의 원리에 근거한 왕의 덕성함양, 관리들의 기강 확립, 사치의 금지, 뇌물의 근절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현실보다 이념을 중시한 당시 보수적 유학자들의 정치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는 또 서양세력과 천주교의 침투를 봉쇄하고자 한 척사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척양사론(斥洋邪論)」은 1866년 최대의 천주교 탄압사건이었던 병인사옥을 배경으로 저술하여 발표된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천주교의 교리를 비판하고 서양세력의 침략 저지와 유학진흥의 방도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유학의 정통성을 천명하고, 선비들의 습성을 바로 잡으며, 인재를 공정하게 뽑고, 백성들의 고통을 살피며, 군비를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대원군(大院君)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외세의 침입과 외래사상의 침투에 대해 전통적 질서와 가치를 지키려는 보수 유학자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밖에도 허목(許穆)의 「척주동해비문」을 주해한 「척주동해비문주해(陟州東海碑文註解)」 등 흥미를 끄는 내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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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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