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미당집 ()

이건창의 명미당집 중 표지
이건창의 명미당집 중 표지
한문학
문헌
개항기 때의 문신 · 학자, 이건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7년에 간행한 시문집.
목차
정의
개항기 때의 문신 · 학자, 이건창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7년에 간행한 시문집.
서지적 사항

20권 8책. 금속활자본. 1917년 중국에 망명하고 있던 김택영(金澤榮) 등에 의해 난통주(南通州) 한보린서국(翰墨林書局)에서 간행되었다. 『명미당집』의 권두에 김택영의 서문과 정오표가, 권말에 동생 이건승(李建昇)과 안종학(安鍾鶴) 및 이엽(李爗)의 발문, 그리고 정가를 포함한 출판사항이 있다.

『명미당집』의 권1에 부 4편, 권2∼6에 시 419편, 권7에 소 8편, 권8에 서(書) 7편, 권9에 서(書) 5편, 서(序) 14편, 권10에 서(序) 9편, 기 16편, 권11에 기 7편, 논 5편, 권12에 발 4편, 설 9편, 서사(書事) 3편, 권13에 잡저 9편, 권14에 잡저 3편, 제문 18편, 권15에 제문 3편, 애사 2편, 가전(家傳) 2편, 전 6편, 권16에 전 4편, 명 7편, 찬 1편, 권 17에 행장 1편, 행략(行略) 2편, 사략(事略) 3편, 권18에 사략 2편, 묘표 1편, 가지(家誌) 3편, 권19에 묘지명 12편, 권20에 묘갈명 14편, 보유(補遺) 2편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명미당집』의 시는 총 15편의 독립된 시 묶음으로 나누어져 있고, ‘한거수초(閑居收草)’·‘남천기은집(南遷紀恩集)’ 등의 제목이 각기 표시되어 있다. 이건창의 시에는 여러 지방을 암행하거나 외직(外職) 또는 귀양갔을 때, 백성의 고초를 보고 읊은 시가 적지 않다.

『명미당집』의 「전가추석(田家秋夕)」과 같은 작품은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이 추석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한편으로 과부가 관리를 원망하는 말을 처절하게 적어 사회적 갈등의 양상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었다. “묻힌 사람의 뼈가 썩어갈 때 뿌린 곡식은 익어갔다오(埋人人骨朽 種穀穀頭熱)”라는 대목에서는 늘상 생활의 주변을 스쳐가는 농촌의 상황을 제시하면서도 절망(뼈가 썩음)과 희망(곡식 익음)이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다. 그러나 시 전체에서는 희망을 절망이 다시 짓밟는 역설이 전개되어 농촌의 피폐상을 심각하게 묘사하였다.

『명미당집』의 「육신묘(六臣墓)」에서는 “이 마음 하루라도 잃어버린다면, 더러운 육신 흙만도 못하다(此心一日亡 肉賤不如土)”라고 하면서 대의(大義)란 고금이 같다고 결론짓고 있다., 단발령을 피해갔다가 세밑에 집에 돌아와 지은 「잡제(雜題)」에서는 죽지 못해 머리를 깎아야 하는 지경을 만났다고 하면서 “어리 같은 이 세상에 어디로 가잔 말고. 아침 내내 말없이 벽만 쳐다보네(大地爲籠安所適 終朝向壁只無言)”라고 한탄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대부로서의 몸가짐과 의리정신을 고심참담한 심정으로 형상화한 것들이다.

『명미당집』의 「답우인논작문서(答友人論作文書)」는 글을 짓는 데 있어 비법을 알려달라는 친구의 요구에 대하여 자신이 느낀 어려운 점을 말하면서 곡진하게 답한 편지이다. 먼저 처음과 끝(수미 首尾), 중간의 구조(간가 間架)를 갖춘 뜻(의 意)을 세워 전체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통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다음에 말을 꾸미라고 하였다. 수사(修辭)에 있어서는 시를 짓듯이 한자 한자를 조심하여 수식하고, 각기 알맞은 행(行)과 자구(字句)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글을 묵혀서 남의 글 보듯이 하여 문장이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철저하게 고쳐나가는 자기와의 싸움을 계속한다. 그렇게 하면 천하와 후세에 읽혀 이해될 수 있는 문장이 된다고 하였다.

『명미당집』의 「역권서(易圈序)」에서는 어렸을 때 의심을 품은 문제를 두고 평생 동안 궁구하는 저자의 학문하는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특히, 『대학』 중에서 뜻(의 意)이 마음(심 心)의 근본이 되고 앎(지 知)이 뜻의 근본이 되며 사물(물 物)이 앎의 근본이 된다는 내용에 의심을 품었으나 당시까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저자의 양명학적 사고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어 주목된다.

『명미당집』의 「당의통략서(黨議通略序)」에서는 자기 당파인 소론(少論)을 옹호하려는 입장에서 벗어나, 당쟁의 전말을 소상하게 정리하려는 저자의 학문적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원론(原論)」에서는 중국의 역사 중 붕당(朋黨)이 일어난 예를 살피면서, 중국의 붕당은 우리나라처럼 한 나라 전체가 몇몇으로 나뉘어 몇 백년을 지내오고 시비를 가리기가 지극히 어려운 경우는 없다는 내용으로 서두를 삼았다. 본론에서는 우리나라의 당쟁은 당대의 사대부 문화가 전체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원인분석을 하였다.

당쟁 원인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① 도학(道學)의 태중(太重: 너무 중히 여김), ② 명의(名義: 명분과 의리)의 태엄(太嚴: 너무 엄함), ③ 문사(文辭: 문장)의 태번(太繁: 너무 번잡함), ④ 형옥(刑獄)의 태밀(太密), ⑤ 대각(臺閣: 사헌부, 사간원의 총칭)의 태준(太峻: 너무 엄격함), ⑥ 관직(官職)의 태청(太淸), ⑦ 벌열(閥閱: 나라에 공로가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은 집안)의 태성(太盛: 너무 융성함), ⑧ 승평(承平: 나라가 태평함)의 태구(太久: 너무 오래됨)로 요약하였다. 당대 문화에 대한 예리한 비평적 안목이 드러나 있는 명편이라 평가할 수 있다.

『명미당집』의 「청은전(淸隱傳)」에서는 김시습(金時習)과 김인후(金麟厚)의 불우한 일생을 다루었다. 이를 통해서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 선비의 처세와 심정을 밝히려 하였다. 「명미당시문집서전(明美堂詩文集敍傳)」은 저자 자신의 일생과 그에 대한 소감을 솔직담백하게 기술한 작품이다.

『명미당집』은 국립중앙도서관 위창문고에 있다. 이건창의 『당의통략』을 합본하여 영인한 『이건창전집(李建昌全集)』 상·하(아세아문화사, 1978)와 『명미당집』 중간본인 『명미당전집(明美堂全集)』 상·하(명미당전집편찬위원회, 1984)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문학통사』 4(조동일, 지식산업사, 1986)
「이건창과 그 일문의 문학」(민병수, 『동아문화』 11, 서울대학교, 1972)
집필자
윤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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