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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당굿 / 군웅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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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굿할 때 신(神)을 상징하기 위하여 입는 의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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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무당이 굿할 때 신(神)을 상징하기 위하여 입는 의례복.
내용

무복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신복·입석·신입석·신령의대·신령님옷’ 등으로 불린다. 지역별로 중부·영남·호남·영동·제주도, 그리고 북부로 나누어 각기 그 지역의 실태를 중심으로 무복의 기능과 지역적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무복의 종류와 형태는 각 지역 또는 무당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1) 중부지역(서울중심)

① 장군치마·저고리 : 장군치마는 남색이고, 저고리는 엷은 하늘색이다. 형태는 민간인들이 입는 일반적인 부인용 치마저고리와 같다. ② 호구치마 : 호구치마는 홍색이고, 형태는 민간인이 입는 일반적인 부인용 치마와 같다.

③ 구군복(具軍服) : 두루마기 모양과 같이 소매가 좁으나 동정이 없고 뒤가 터져 활동하기 좋게 되었으며, 검정 색인데 양 소매만 붉은 색으로 되어 있다. ④ 전복(戰服) : 남색으로 되어 양 소매가 없고 앞이 터졌으며 뒤에도 등 밑이 아래까지 터지고 양 겨드랑이 밑이 터졌다.

⑤ 남철릭[藍天翼] : 직령(直領)으로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소매가 넓고 길다. 전체가 남색으로 되어 양 소매 끝 1척이 백색으로 되어 있다. 이 옷을 입으면 양 소매 끝이 땅에 닿는다. ⑥ 홍철릭[紅天翼] : 형태는 앞의 남철릭과 같고 색만 붉은 색이다. 양 소매 끝 1척이 백색으로 되어 있다.

⑦ 백장삼 : 형태는 남철릭과 같고 전체가 백색으로 되어 있다. ⑧ 흑장삼 : 형태는 남철릭과 같고 전체가 검정 색으로 되어 있다. ⑨ 불사(佛師)옷 : 형태는 백장삼과 같고 전체가 회색이다. ⑩ 부인 옷 : 원삼(圓衫)과 동일하며 연두색 바탕에 양 소매가 색동으로 되어 있다. ⑪ 창부(倡夫)옷 : 초록색 바탕에 양 소매가 색동으로 되어 있고 양옆구리가 터졌으며 앞섶과 뒷섶이 무릎 위에 닿게 짧다.

⑫ 몽두리 : 형태는 두루마기 모양과 같이 소매가 좁고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옷고름이 없으며, 전체가 노란색이다. ⑬ 신장(神將)옷 : 두루마기와 모양이 같은데 전체가 노란색이다. 이밖에 부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무복은 원삼과 백지로 접은 고깔이 하나씩 있는데, 원삼의 형태와 색채는 서울지역의 ‘부인 옷’과 같으며, 종이고깔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세모꼴 고깔이다. 이 지역에서는 원삼을 ‘활옷’이라고도 한다.

(2) 호남지역

이 지역에는 현재 무복이라 할만한 의례복이 없다. 무당이 굿을 할 때는 정결한 흰색의 평상시 복장 그대로 치마와 저고리를 입는다. 아주 큰 굿이 있을 때 ‘제석풀이’에나 굿 주인집에서 흰색 두루마기를 빌려 입고 백지로 접은 고깔을 쓴다. 그러나 요즈음은 두루마기도 입지 않는 경향이다.

나이 많은 노부들에 의하면 그들이 어렸을 때 어른들이 입는 무복으로 ‘신입석’이라는 것을 보았으나 자기들 대(代)에 와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한다. ‘신입석’은 소매 없이 양옆구리와 등뒤가 터졌고, 겉은 남색, 속은 홍색이었다는 점으로 보아, 오늘날 다른 지역의 무복으로 전복과 같은 형태의 것으로 보인다. ‘신입석’을 입으면 머리에는 고깔을 썼다.

(3) 영남지역

현재 영남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복은 남색 쾌자가 있다. 이 쾌자의 형태는 서울지역의 것과 같다. 전에는 활옷도 사용하였으나 요즈음은 활옷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쾌자만 사용되고 있다. 쾌자는 거리굿을 제외한 굿의 전과정에 사용된다.

굿을 할 때는 무당이 쾌자를 입고 가슴에 너비 4치, 길이 7척의 청색 띠를 띠고 머리를 얹는다. 머리를 얹는 방법은 쪽을 풀어 두 가닥으로 나누어 땋고, 한 끝에 붉은 댕기를 드린 다음 앞으로 돌려 이마 위로 감고, 그 위에 흰 머리띠를 잡아맨다.

(4) 영동지역

영동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무복에는 쾌자와 활옷 두 가지가 있다. 쾌자는 ‘쾌지’라고도 하는데, 그 형태는 서울지역의 전복과 같다. 다만, 쾌자를 입고 가슴에 띠를 띠는 것이 다른데, 그 띠는 영남지역의 것과 같다. 활옷의 형태는 철릭과 유사하고 명주와 양단 판에 색동 소매를 붙였다. 활옷을 입을 때는 가슴에 띠를 매는데 그것은 쾌자에 사용하는 띠와 같다.

(5) 제주도지역

제주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복은 관디[冠帶]와 섭수 두 가지가 있다. 관디는 홍색의 도포(道袍)인데, 여기에 검정 갓을 쓰고 무릎 밑에는 행전(行纏)을 친다. 관디는 큰 굿을 할 때 사용되는 무의 복장이다. 섭수는 남색 쾌자를 흰 두루마기 위에 입고 머리에 ‘송낙’이라 하여 백지 고깔을 쓰며, 가슴에 너비 12㎝의 홍띠(또는 노랑띠)를 띠고 무릎 밑에는 행전을 친다. 섭수 차림은 보통 굿을 할 때의 무의 복장이다.

(6) 북부지역(평양중심)

이 지역의 무복으로 칠성옷·신령님옷·장군옷·대신옷·대감옷·관복·사신군복·중국장군옷·창부옷·애기씨옷·도령옷·외신대감옷 등 12가지가 있다. 이런 무복의 형태는 명칭상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서울지역의 무복에서 본 형태와 유사하여 철릭·창옷·쾌자류의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무복은 제의 (굿)에서만 입는 의례복이다. 무복의 종류가 많은 것은 굿의 각 제차거리마다 해당 신의 상징으로 무당이 입기 때문에 무복의 수는 굿에서 제의를 받는 신의 수에 비례한다. 무당이 굿에 임할 때 무복을 입고 방울을 손에 쥐면 몸으로 신이 내린다.

그래서 무당은 무복을 입으면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무당이 아니라 비범한 신권적 존재로서의 무당이 되고, 그렇게 되면 무당은 신이 몸에 실려 신격화하여 신의 말인 ‘공수’를 내리게 된다. 무복은 이렇게 신의 옷으로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늘 신성물로 다루게 되고, 굿이 아닌 평상시에는 손으로 만지기조차 두려워한다.

또, 무복이 오래되어 때가 끼거나 상하게 되면 빨거나 깁는 일없이 불에 태워 없애고 다시 새것으로 만들며, 무당이 죽으면 불에 태워 없앤다. 이와 같은 신성적 금기 때문에 무복은 언제나 당대에서 끝나고 대를 물리는 일이 없어 오래 전해지지 못한다.

굿할 때 각 거리마다 무복을 입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부정거리 : 평상시의 복장으로 한다. ② 말명거리 : 위에는 평상시의 저고리를 입고, 아래에는 남색의 장군치마를 입으며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방울을 든다. ③ 가망거리 : 구 군복을 입고 오른손에 부채와 백지 2장, 왼손에 방울과 백지 1장을 든다.

④ 상산거리 : 남색의 장군치마를 입고 그 위에 구 군복·전복·남철릭의 순으로 껴입고 머리에는 홍갓을 쓰며, 왼손에 삼지창, 오른손에 언월도를 들어 장군신의 위엄을 상징한다. ⑤ 별상거리 : 아래에는 장군치마를 입고 위에는 구 군복을 입으며 그 위에 전복을 껴입는다. 머리에는 안올림 벙거지를 쓰고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삼지창을 들어 별상신의 위엄을 상징한다.

⑥ 대감거리 : 전복을 입고 머리에 안올림 벙거지를 쓰며, 짚신 한 켤레를 새끼로 뒤축을 꿰어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엇비슷이 맨다. 이 짚신을 ‘걸립대감’이라 한다. ⑦ 불사제석거리 : 호구치마를 입고 그 위에 백장삼을 입으며, 머리에는 백고깔을 쓴다. 그리고 너비 30㎝, 길이 3m 가량의 붉은 띠를 ‘가사(袈裟)’라 하여 어깨에 엇비슷이 걸친다.

⑧ 호구거리 : 호구치마만 입고 오른손에 부채, 왼손에 방울을 든다. ⑨ 성주거리 : 홍철릭을 입고 머리에 홍갓을 쓴다.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왼손에 방울을 든다. 성주거리가 끝나고 부군거리를 놀 때도 복장은 성주거리와 동일하다. ⑩ 군웅거리 : 성주거리와 복장이 같다. ⑪ 창부거리 : 창부 옷을 입고 오른손에 부채를 들어 창부 신을 상징한다.

⑫ 뒷전거리 : 평상복으로 오른손에 부채만 든다. 뒷전거리 중의 ‘영산’을 놀 때부터는 부채도 안 든다. 이와 같이, 무복은 굿의 각 거리마다 해당 무신의 상징으로 그 신의 옷이란 의미로 착용되고 있다. 무복을 착용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어느 경우에나 무복의 옷고름이나 단추를 매지 않고 그대로 옷의 양팔만 꿰어 몸에 걸친다. 옷을 꼭 잡아매지 않는 것은 아마도 신의 강신과 회송이 무당의 몸에서 자유롭게 되라는 의미일 것이다.

중·북부지역 무속에서는 무복이 집중적으로 쓰이고, 남부지역에서는 무복이 점차 인멸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중·북부지역의 무속에서 무당 한 사람이 무복을 10∼20종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하여 영남이나 제주도에서는 무당 한 사람이 무복을 2종 정도만 가지고 있으며, 호남지역은 아예 무복이 인멸되어 현재는 굿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수적인 면에서 남부와 중·북부지역 무속에서 무복의 차이가 현저하고 무복의 형태면에서 볼 때 남부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복이 쾌자나 활옷류로 중·북부지역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제주도의 경우 ‘관디’라 하여 도포를 무복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무복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중·북부지역 무속에서는 무복이 신복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굿에서 반드시 입어야 하지만, 남부지역에서는 무복이 인멸되었거나 신복으로의 기능이 희박하여 굿에서 무복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와 같은 무복의 지역적 차이는 그 지역에 분포된 무당의 기능과 관련된다.

중·북부지역에는 강신무가 지배적이고 남부지역은 세습무가 지배적인데, 강신무는 무당이 되는 성무(成巫) 초기부터 신병을 체험하여 신의 실재를 믿고 그 신의 영력으로 굿을 하며 인간의 길흉을 점치기 때문에 그 신의 신복으로서 무복이 중요시되지만, 남부지역의 세습무는 신적 영력이 도태되고 굿은 대대로 세습되는 무의 사제권(司祭權)에 의하여 의식을 집행하게 되어 신복으로서의 무복이 중요시되지 않고 점차로 인멸된 것이다.

같은 남부지역에서도 강신무 계열의 일종인 ‘명두’의 경우는 정통한 굿을 할 수는 없지만, 제의에 임할 때는 신복을 상징하는 무복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무복의 지역차 문제는 그 지역에 분포된 무당의 성격적 기능에 따라 차이를 보이게 된다.

참고문헌

『한국무속연구』(김태곤, 집문당, 1981)
『한국의 무당』(최길성, 열화당, 1981)
집필자
김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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