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목판본. 권말에 허충길의 세지(世識)와 간기(刊記)가 있다. 이를 보면 먼저 황해도관찰사 박승임(朴承任)이 해주본(海州本)을 찍어 이산서원(伊山書院)에 보내 왔다.
이 때 뜻있는 후학들이 이를 널리 배포하기 위해 간행을 청해 허충길의 주관 하에 이완(李完)·조목(趙穆)·허임필(許霖弼) 등이 교정을 보고, 우몽(禹夢)·황운진(黃雲進) 등이 각수(刻手)를 담당하였다.
그 내용은 모두 6조로 다음과 같다. 첫째, ‘중계통이전인효(重繼統以全仁孝)’라 하여 왕통과 가통이 일통해 위계 질서를 중대시하고, 예법으로 전인전효지도(全仁全孝之道)를 기본으로 하여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둘째, ‘두참간이친양궁(杜讒間以親兩宮)’이라 하여 가법과 ≪소학≫의 윤리를 밝게 하는 교훈을 독실하게 하여 효와 자(慈)를 실천함으로써 가정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고 소인배들의 참소를 끊어야 한다고 하였다.
셋째, ‘돈성학이주치본(敦聖學以主治本)’으로 제왕(帝王)의 학은 심법(心法)의 요인으로 순임금의 명(命)이 그 연원이 되며, 유학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데 힘써 경전을 돈독히 하여야 한다.
특히 『대학』과 『중용』을 더욱 익혀, 이를 실천함으로써 성(誠)을 체득해 인·의·예·지의 도를 이루고, 덕을 세워 치국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넷째, ‘명도술정인심(明道術正人心)’에서는 고대 당우삼대(唐虞三代)에는 도술이 밝아 인심이 바르므로 치화가 쉽게 되었으나, 주가 망한 뒤 도술이 밝지 못하고 사혹(邪惑)이 많았으므로 인심이 바르지 못하고 치화가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고려 말 정주학(程朱學)이 전래된 뒤, 조선 건국이 유교에 기초를 두어 열성(列聖)들이 이에 바탕을 두어 치국에 힘썼다. 그러나 유도가 밝지 못해 불교·도교 등이 인심을 해치므로 임금도 더욱 유도를 밝히는 데 힘써 인심을 바로잡기를 바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다섯째, ‘추복심이통이목(推腹心以通耳目)’으로 한 나라의 국체는 한 사람의 신체와 같아 왕은 머리, 대신은 복심, 대간은 이목으로 삼아서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실(實)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섯째, ‘성수성이승천애(誠修省以承天愛)’라 하여 먼저 재해를 통하여 잘못을 경고, 그래도 스스로 반성을 하지 않을 경우 괴이한 일로 두렵게 한다. 이렇게 해도 깨닫지 못할 경우 변(變)으로써 패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인군은 성실하게 자기를 닦고 천심을 본받아 인애(仁愛)로써 사목(司牧)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6조목을 살펴볼 때 치도의 근본을 성리학에 두고, 그 중흥과 실천을 강조했는데, 여기서 이황의 정치 철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