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조 ()

현대문학
개념
문학작품에 담긴 각 시대의 총체적 또는 주도적 사상의 경향을 가리키는 사조(思潮). 문예사조.
정의
문학작품에 담긴 각 시대의 총체적 또는 주도적 사상의 경향을 가리키는 사조(思潮). 문예사조.
내용

광의로는 문학작품에 담긴 사상을, 사상 상호간의 영향과 사상을 표현한 작가의 체험 그리고 독자에게 미친 영향 등을 고려하여 역사와의 관련 속에서 고찰한 그 생성 및 전개 과정을 말한다. 이 경우, 한정된 특정 시대의 문학사상의 경향일 수도 있고, 연속된 전후(前後) 시대에 걸쳐 교체와 변화의 맥락을 가진 문학사상일 수도 있다.

후자는 문학사조사 또는 문예사조사의 형태를 취하며, 문학사의 한 범주로 볼 수 있으나, 관점이나 방법에 따라서는 문학사를 초월할 수도 있다. 문학사조는 문학사, 문학비평사, 문학 바깥에 있는 사상사나 사회사상사와의 관련에서, 문학사조에 포함되는 내용의 성격과 요소와 그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즉, 문학사상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다. 문학작품에 담긴 창작 방법, 운율과 형태, 문체와 양식(樣式), 이미지와 수사적 장치, 작품의 구조, 작중인물의 성격과 태도, 반영된 사회성과 역사성, 기타 언어 문제 등은 그대로 문학사상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반영하거나 이것들을 밑받침하여 체계를 이룰 수 있는 모든 사고 내용은 문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학작품이 담고 있는 미적(美的)·도덕적·정치적·사회적인 신념, 관념, 인생관과 세계관 등을 문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사상은 작품 밖에 있는 작가의 전기적(傳記的) 사실, 현실의 정치 및 사회사상 일반과의 관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사상을 사회적 생산물로 보는 경우도 있다.

또 문학개념의 다양성에 비추어 미적·예술적 의미의 문학(Dichtung)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미적 기능을 지닌 모든 위대한 저술(great books), 즉 광의의 문학이라는 관점에서 종교적, 철학적 텍스트도 포함해서 문학사조를 고찰해야 할 필요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학사조는 문학사상의 시간적인 흐름, 즉 역사적 발전 또는 전개 과정이므로, 문학사와 마찬가지로 문학과 역사가 만나게 되고, 원론적 체계성과 통시성(通時性)의 이중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통시성에서 시선을 돌려 시대를 초월한 범시대적 사조로서의 공시적(共時的) 보편성을 강조하면 원론적·체계적 성격을 중시하게 되고, 통시성에 의한 역사적 발전 과정을 중시하면 시대사조로서 문학사조(시대사조로서의 문학사상)를 구성하게 된다.

또 문학과 역사, 체계성과 통시성의 이중성은 각 민족, 각 국가라는 공간 및 시간 단위의 문학사조(예를 들면 ‘한국문학사조사’ ‘중국문학사조사’ 등)를 구성할 수도 있고, 이러한 공간 및 시간 단위를 확대하여 인류적 보편성을 지향하는 세계문학(world literature)으로서 문학사조를 구성할 수도 있다.

물론, 전자는 인종족·민족적 특성을 강조하고, 후자는 민족문학이나 국민문학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보존하면서 인류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므로 각 국가의 국어와 관련되어 국민문학을 형성하지만, 특히 근대문학의 발전에는 국가 상호간의 교류와 영향 관계가 빈번하므로 문학사조도 비교문학(comparative literture)의 방법과 관련을 가지며, 문학 이외의 사상사나 철학사 등과도 관련성을 가지나 장르상의 경계선을 분명히 긋는다.

문학사조(또는 문학사조사)의 연구 방법은 문학사나 문예학(litreaturwissenschaft, Dichtungswissenschaft)의 방법과 기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지만, 문학사 중의 특히 사조의 측면을 중시하는 비평사와, 정신세계의 자율성과 초월성의 인식 및 그 이론화를 지향하는 문예학의 방법과 관련이 깊다.

문학사조의 연구를 문학사의 연구와 때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베이컨(Bacon, F.)이 ‘문학사’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이후 초기의 문학사 연구는 문헌학적 방법에 의거한 것이고, 자연과학이 발달한 19세기부터의 실증주의 방법도 문헌의 수집, 정리, 고증이라는 범위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문학연구, 특히 문학사상은 자연과학에 대체할 수 있는 정신과학을 요구하게 되었고, 여기서 정신사적 방법이나 철학적 방법을 취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문학이나 문학사상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집단적·현실적·역사적 관점에서 새로 대두된 사회학적·경제사적 방법은 마르크스주의 및 신마르크스주의와 깊숙하게 관련된다. 한국에 있어서 문학연구는, 고전문학과 근대문학의 지속성과 변화성을 지양·극복하려고 하는 한 방법이 있다(조동일).

그리고 식민지하에서 시작된 초기 실증주의적 방법에서 벗어난 일종의 정신사적 방법을 조윤제(趙潤濟)의 신민족주의와 단재(丹齋)신채호(申采浩)의 문학론에서 찾는 견해(김윤식), 민족문학적 전통 내지 리얼리즘적 시각(이선영) 등이 있다.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를 수행할 주체를 민중으로 보는 단재의 문학 방법론은 아나키즘(anarchism : 무정부주의)으로 귀결되지만 민중을 역사변혁의 주체로 보는 이후의 사회학적·경제사적 관점 또는 민중적 리얼리즘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한편 근대화 과정에서 볼 때, 개인주의적 자아 실현과 예술적 성숙을 위한 방향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문학과 정치, 문학운동(예술운동)과 민족운동의 대립과 그 초극의 변천사를 간과할 수 없다. 비역사주의적 방법론(분석비평·형식주의·구조주의 등)도 이러한 대립·기복의 맥락에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의 문학사조]

유럽의 문학사조는 고전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자연주의·상징주의·모더니즘 등의 변증법적 발전, 또는 동(動)과 반동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나, 한국의 근대문학(현대문학)의 경우는 반드시 유럽의 경우와 일치하지 않는다.

사회의 변혁과 개체의 확립을 지향하는 한국의 근대화를 서구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수세기에 걸쳐 발달한 유럽 문학사조의 공시적 유입에 의한 혼류와 교착 및 표피(表皮) 현상은 한국사의 정체성(停滯性)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서구의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와 연속될 수 있는 동양 또는 한국의 그러한 사상의 정립 가능성 여부도 문제이고, 또 강화도조약(1876) 이후 1910년까지의 초기 왜곡된 근대화 과정은 막연히 ‘근대주의’라고 하거나 ‘개화계몽기’라고 하나, 유럽의 사조적 통칭과는 거리가 멀다.

또 1920년대 초기에는 낭만주의·상징주의·사실주의·자연주의 등의 일시적 유입과 혼류현상, 그 주도적 사조의 결여 등은 단지 한국적 현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토착화되었는가의 여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러한 여러 허점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조를 ① 1876(1894)∼1910(한말 개화기), ② 1910∼1945(일제강점기, 일제식민지시대), ③ 1945∼현재(광복, 남북분단기) 등으로 정치적·사회적 변혁과 같이 시대구별을 해본다면 역사적 전개과정은 비교적 선명해질 것이다.

한말의 개화계몽기는 근대화를 위한 전환기로서 전통지향과 근대지향의 갈등과 모순을 지닌 문학사조로 전개된다. 근대사상의 도입으로 해체 위기를 맞은 유교는 척사위정(斥邪衛正)을 주장하면서 전통지향으로, 한편 문명개화는 서구지향, 즉 민주적 요소와 자본주의 수용의 가능성으로 양극화되고, 문호개방을 요구하는 외세의 발호와 정치적 혼란으로 국민적·신민적(臣民的) 의식이 강조되어 근대적 개인의식이나 시민의식의 가능성을 압도한다.

이러한 차에, 외세의 압력 강화, 문명개화를 담당할 주체세력의 허약 등으로 마침내 국권을 외세(일제)에 넘기는 비운을 맞게 된다. 우국가사·시조·창가·개화기소설·신체시 등 이 시대의 문학 장르는 척사위정의 전통지향, 문명개화의 근대사상 및 애국의식 등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1910∼1945년까지를 일제강점기 또는 일제식민지시대라고 통칭하지만, 이 시대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문학사조상의 한 특정 개념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특히, 191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30년간은 문학사조의 한 개념이 독점한 시기는 아니며, 다양한 사조가 혼류·교착·갈등의 공존 현상을 유지하면서 전개되었다. 물론, 다양한 문학사조를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정치사상을 관점의 기본축으로 원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1910년대는 1920년대 문학사조의 전개를 위한 준비기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일합방으로 인하여 내면화된 국가회복의식을 핵으로 한 민족주의와 근대화사상이 병행하면서, 한편 개인적 자아와 그 서정이 미약한 대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신채호·박은식(朴殷植) 등의 비타협적 민족주의 논조, 한용운(韓龍雲)의 불교개혁을 골격으로 한 전통지향, 최남선(崔南善)·이광수(李光洙) 등의 문화적·개량적 계몽론 등은 1920년대에도 계속되지만 근대적 계몽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편 단편적으로 제기한 이광수의 심미적 문학론, 김억(金億)·황석우(黃錫禹)·주요한(朱耀翰) 등의 상징적·낭만적 문학론, 김동인(金東仁) 등의 심미적 문학론, 백대진(白大鎭)의 자연주의 문학론 등은 근대주의의 한 축으로서 이 시기에 싹이 트기 시작한 근대적 개인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1920년대의 문학사조는 도입·소개의 수준에 머물던 계몽적 차원의 문학사조(낭만주의· 사실주의·자연주의·상징주의·심미주의 등)와, 항일운동(1919.3.1.)을 통한 민족공동체의식 및 좌절의 체험과 어울려 어느 정도 내면화된 논리의 과정을 밟으면서 작품으로도 구체화된다.

초기의 낭만주의(romanticism) 계열(상징주의·심미주의 포함.)과 리얼리즘(realism) 계열(사실주의·자연주의)이 근대적 개인의식과 관련된 문학사조로 본다면, 3·1항일운동을 겪은 민족주의는 1925년을 고비로 계급적 민중의식을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문학과 국민문학파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1920년대 전반기의 시를 일괄하여 낭만주의로 보는 견해(오세영)와, 상징주의(symbolism)로 보는 견해(김은전, 강우식), 또 낭만주의와 퇴폐주의로 갈라 보는 견해(백철) 등이 있다. 상징주의·퇴폐주의·심미주의 등의 원천이 낭만주의라는 점과, 1920년대 문학사조의 혼류·교착현상으로 볼 때 낭만주의로 개괄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낭만주의는 김형원(金炯元)·남궁벽(南宮璧)의 생명주의, 김억·주요한·김소월(金素月) 등의 민요적 서정주의, 박종화(朴鍾和)·박영희(朴英熙)·이상화(李相和)·황석우(黃錫禹) 등의 병적 환상세계(또는 상징세계, 데카당스) 등의 여러 경향을 보인다.

특히 병적 낭만주의에 대하여 부르주아지의 현실도피, 역사로부터의 개인주의적 망명, 또는 상실한 현실의 역설적 반영 등으로 볼 수도 있다. 1920년대의 근대 리얼리즘의 도입은 낭만주의·상징주의·심미주의 사조 도입의 시기와 양상을 같이한다.

리얼리즘을 현실주의라는 일반적 개념으로 볼 때, 여기에 포함되는 1920년대 한국 소설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naturalism)의 혼류·교착 현상은 전자의 경우와 다를 바 없고, 이러한 혼란 현상은 그 후의 비판적 리얼리즘과 변증법적 리얼리즘, 그 뒤의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의 수용 논의에도 계속된다.

자연주의를 본격 도입하기 시작한 백대진이 ‘사실주의 곧 자연주의’로 간주한 점은 혼류·교착 현상의 한 실례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의 경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구별을 지양하여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으로 통칭하는 관점도 없지 않다(장사선).

리얼리즘의 도입 초기에는 몽상적·공상적·낭만주의문학과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반대, 있는 그대로의 현실 묘사, 인생과 사회의 진상 표현 등 주로 19세기 사실주의의 성격을 강조했다. 그리고 여기에 자연과학과 유물론의 도입으로 과학적 방법, 결정론과 무신론이 추가되어 자연주의로 발전한다.

그러나 여전히 근대적 개인주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후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사회의식의 성장을 배경으로 비판적 리얼리즘(critical realism)으로, 다시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1925) 발족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한 변증법적 리얼리즘(dialectical realism)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수용 논의에까지 이른다.

이 과정을 통해서 문학의 대중성(민중성)·계급성·당파성·혁명성 등이 강화되고, 근대화의 사회적·집단적 축이 밑받침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흔히 말하는 마르크스주의문학 또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은 문화적 민족주의(한글중시, 시조부흥, 조선주의 등)를 표방하는 국민문학파의 문학론, 국민문학파의 이론적 연장선상에 있는 절충파와의 갈등을 빚으나 신간회 해산(1929), 만주사변(1931), 경제공황, 카프의 검거와 강제 해산(1935) 등으로 일단 종식된다.

국민문학의 경우, 낭만적 역사소설로의 도피, 통속적 연애소설로의 경도 등으로 현실과는 괴리되고, 카프 계열에서는 전향, 휴머니즘론과 범속한 일상 세계로의 비켜가기 현상이 일어나는 중에서도 김남천(金南天) 등의 발자크(Balzac, H.)와 루카치(Lukács, G.)를 원용한 리얼리즘 탐구가 계속된다.

어쨌든 카프와 국민문학파 즉 한국 문학의 좌파와 우파의 분열,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분열은 이후의 한국 문학사조와 문학사의 양극화 구도를 이 시기에 고착시킨 것으로 보인다.

카프와 국민문학파의 갈등, 카프 진영내의 내분과 논쟁, 일제 밀리터리즘(militarism : 군국주의) 탄압의 가속화, 꽉 막힌 한국 문학의 방향―이런 와중의 물밑에서도 1920년대 후반부터 통칭 모더니즘이 일본을 거쳐 유입되고, 1930년대에는 다양한 이론과 함께 작품으로도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1920년대의 감상주의(感傷主義)와 프롤레타리아문학의 편내용주의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 : 反定立)로 등장한 한국의 모더니즘도 기존 예술에 대한 반항과 부정, 자의식의 절대성과 회의주의라는 유럽 모더니즘의 세계관·시간관·언어관 등을 공유한다.

반낭만주의는 병적 정서 과잉에 대한 절제의 요구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적 인간관(주관주의·주아주의)과 세계관(낭만적 유기체론, 범신론), 시적 방법론(자연발생적 표현론) 등에 대한 부정운동이며, 반리얼리즘은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반역사주의, 반일어설(反日語設)을 포함한 방법론에 대한 부정도 의미한다.

반권위, 반전통, 반종교, 반도덕, 그리고 기존의 인간개념에 대하여까지 회의하고 거부하는 모더니스트들은 새 질서의 추구를 위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태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모더니즘은 반현실·반역사주의라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 영미계(이미지즘·주지주의)와 대륙계(다다이즘·초현실주의·미래파 등), 또는 온건 모더니즘과 과격 모더니즘으로 양분된 경향도 보인다.

그러나 현대문학의 한 분수령을 형성한 1930년대의 주요 문학사조로서 현대시의 지적·미학적·방법적 영역을 확대하고, 일제 말기(1940∼1945)의 공백을 건너 분단시대 이후에도 계속 전위화·내면화의 과정을 밟는다.

음악성 및 감정의 절제, 즉물적 이미지와 언어주의를 표방하는 이미지즘(imagism)은 정지용(鄭芝溶)·김광균(金光均)·장만영(張萬榮) 등에게서 결실을 본다. 이러한 기조에서 사상과 감정의 통합을 강조하는 형이상적(形而上的) 방법을 원용한 주지주의(intellectualism)는 모더니즘의 이론을 도맡았던 김기림(金起林)의 장시(기상도)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게 된다.

언어주의, 예술의 자율성 등의 노선을 수용하면서, 모더니즘의 세계관인 회의주의, 낭만적 자아 너머의 실재, 혹은 현실과 상관적인 초현실의 추구 등을 강조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는 ≪삼사문학 三四文學≫ 동인과 이상(李箱) 등에 의해서 전개된다.

특히 이상의 회의주의, 또는 허무주의는 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소외와 단절, 현실과 자아와의 화해 배제, 나아가서는 자아 해체 경향 등을 역설과 반어를 통해서 보여준다. 모더니즘의 이 두 방향을 광복후의 분단시대에도 그 연속성을 갖는다.

한편 1930년대 초에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순수한 예술성을 지향하는 김영랑(金永郞)·박용철(朴龍喆)·신석정(辛夕汀) 중심의 시문학파, 중반에는 생명의 관능적 육성의 서정주(徐廷柱), 원시적 의지의 유치환(柳致煥) 그리고 오장환(吳章煥) 등의 생명파 시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주관주의와 낭만주의를 공통적 기조로 하는 점에서 1920년대 낭만주의 노선의 건전한 1930년대적 발전 양상이며, 프롤레타리아문학의 계급적 집단주의와 이데올로기를 외면한 점에서 카프에 대한 반동이며, 언어주의와 예술의 자율성은 동시대의 모더니즘과 공유하지만 모더니즘의 과격성, 의식적 방법론과 회의주의에 동조하지 않고 자연발생적 표현론을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시문학파와 생명파는 카프 계열의 리얼리즘과 역사주의로부터 현실도피·역사의식 결여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 노선은 반생명적 상황 속에서의 생명보존과 개체 실현을 바탕으로 한 예술주의·낭만주의라고 할 수 있고, 모더니즘과 더불어 문학사조의 우파에 속한다.

김동리(金東里)의 구경적(究竟的) 생의 추구를 기조로한 순수문학, 이병기(李秉岐)·이태준(李泰俊) 등의 문장파, 그리고 1940년 전후의 청록파(조지훈·박목월·박두진)도 기본적으로는 시문학파 및 생명파와 노선을 같이한다.

이육사(李陸史)·윤동주(尹東柱)의 옥사, 신간회와 카프의 강제 해산, 상해의 임시정부와 북간도의 독립군 등의 항일투쟁에도 불구하고, 중일전쟁(1939)·태평양전쟁(1941) 등이 발발하여 일제 밀리터리즘(militarism, 군국주의)의 식민지 통치는 전시체제로 바뀌어 창시개명, 매체의 폐간, 전시체제로의 강제 동원 등으로 절필과 침묵, 투옥과 망명, 일부 문인의 부역 등 얼룩진 암흑이 일제 말기의 5년간을 뒤덮어, 한국 문학은 공백기를 맞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1945)으로 광복을 맞으나, 소련군(북쪽)과 미군(남쪽)의 진주로 다시 남북분단시대로 접어든다. 국토, 민족, 이데올로기의 분열은 국가분단으로 이어져 마침내 6·25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종전으로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의 3년간(이른바 해방공간)은 정치·사회 및 이데올로기의 혼란, 민족주의와 마르크스주의와의 분열·투쟁, 문인 및 정치가들의 월북과 월남 그리고 전향 등 거의 아나키즘에 가까운 상태를 드러낸다.

세력 확장을 위한 좌우익 문학단체(임화 등의 문학건설본부, 한효 등의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그리고 우익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등)가 난립하면서 정치적 이념 대립(김윤식이 지적한 ① 민족주의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 ② 남로당의 인민연합독재 민주주의 국가, ③ 북로당의 일당독재 사회주의 국가), 이에 상응하는 문학과(① 부르조아 민주주의 민족문학, ② 진보적 리얼리즘, ③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립, 우익 순수문학측(金東里, 趙演鉉 등)과 좌익 마르크스주의 문학측(金東錫, 金秉逵)과의 논쟁이 전개되면서, 문학관의 정립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싸움은 절정에 달한다.

이러한 좌우 문학사상의 논쟁과 대립은 1920년대 후반 카프와 국민문학파의 대립으로 정착된 양극 구도의 연장선상에 놓이나, 1948년 정부수립으로 좌익측의 월북 또는 전향(보도연맹 가입)으로 우익 민족주의 노선의 승리로 일단락된다.

이리하여, 해방공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남북한으로 갈라지게 되나 1960년대는 다시 순수와 현실참여로 변형된 양극화 현상이 발생한다. 남북한이 각각 정부수립으로 분단은 1차적으로 고정되고, 남북전쟁(한국전쟁)으로 분단은 2차적으로 더 고착화된다.

남북한, 그리고 UN과 중공의 참전으로 동족간 내전이 국제전의 성격을 띠게 됨으로써 분단과 통일문제도 민족 내부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이중구조가 된다. 1950년대는 전중(戰中)을 포함해서 흔히 전후문학으로 통칭되나, 이 시기에는 전쟁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실존주의와 모더니즘, 그리고 일종의 휴머니즘적 리얼리즘 문학이 대두한다.

전쟁의 참상과 비극은 공동체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죽음의 유한성을 직·간접으로 체험하게 되어 ‘실존’의 문제, ‘인간존재’의 문제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서구의 실존주의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그러한 현실적 상황과 영향에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적 성격을 띠면서 작품으로 구체화된다.

신동집(申瞳集)·김윤성(金潤成)·김남조(金南祚)·홍윤숙(洪允淑) 등은 훼손된 생명의 회복을 추구하는 휴머니즘 경향을 보여준다.

실존주의의 ‘실존’·‘현존재’·시간인식 등은 개인이나 주관주의를 핵으로 하는 낭만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1920년대 초기 낭만주의, 이어 1930년대의 낭만주의 등의 광범한 발전선상에 포함시켜 사조적 연속성과 변화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한편 한국전쟁은 인간성의 파괴, 인간적 신뢰의 결여를 가져왔다. 그러한 황폐화와 불신은 자연스럽게 1930년대 모더니즘과의 연속성을 갖는, 회의주의를 기조로 한 모더니즘 사조를 드러내게 한다.

잿더미로 변한 현실, 통합성을 잃은 세계의 파편화, 연속성을 상실한 시간의 토막화라는 전후의 허무주의는 현실의 새로운 인식과 새 질서 찾기의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박인환(朴寅煥)·김규동(金奎東)·김춘수(金春洙)·전봉건(全鳳健) 등으로 대표하는 모더니즘은, 전후의 불안과 전쟁의 참상을 반영한다.

한편 조향(趙鄕)은 언어의 순수성과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강조하는 초현실적 모더니즘의 전위성을 보여준다. 김춘수의 후기 무의미 시는 그의 모더니즘의 한 정점으로서 1990년대 전후의 해체시, 해체중의와 연결되고 있다. 1950년대의 전후소설은 동족상잔과 국제적인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실존주의와 리얼리즘이 어울려 괄목할 만한 양상을 보인다.

오상원(吳尙源)의 <유예>(1954), 장용학(張龍鶴)의 <요한시집>(1955) 등은 실존주의적 경향의 현실인식을, 황순원(黃順元)의 <학>(1953), 오영수(吳永壽)의 <갯마을>(1953), 이범선(李範宣)의 <학마을 사람들>(1957) 등은 향토적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월남 난민이나 전쟁 고아와 도시 빈민들, 불구자 등을 다룬 손창섭(孫昌涉)·이호철(李浩哲)·송병수(宋炳洙) 등의 소설은 미래가 차단된 리얼리즘을, 최일남(崔一男)은 무력한 서민층을 묘사한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4·19의 성공과 좌절로 시작된 1960년대의 문학사상은 선명한 리얼리즘, 즉 역사의 재인식과 역사에 대한 책임, 고발과 비판, 현실참여 등의 주장, 순수와 참여의 논쟁, 그리고 또 한편 자의식과 생존논리의 추구 양상을 보이지만, 대체로 전후문학의 연장선에 놓인다.

서기원(徐基源)·최인훈(崔仁勳)·김승옥(金承鈺)·이문구(李文求) 등의 활동이 돋보인 때다. 1970년대의 민중의 체험을 강조하는 시민문학과, 그 연장인 1980년대의 민중적 리얼리즘(민중주의)에 이르면 새로운 집단적·계층적 세계관이 표면화하여, 1950년대의 실존적 리얼리즘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1950년대 전후문학에도 실존주의 및 모더니즘, 그리고 리얼리즘이라는 두 축이 있음을 알 수 있거니와, 1925년 무렵부터 고착된 문단 및 문학사조의 양극화 현상의 연속된 틀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양극구도는, 1960년대에 이르러 순수와 참여의 대립과 논쟁으로, 시민문학과 민중·민족문학론이 우세한 1970년대에도 이 양극구도가 계속되고, 특히 1980년대는 모더니즘과 민중적 리얼리즘으로 양극화하며, 온건 모더니즘이나 전통주의 등 여타의 문학사상은 이 양극화의 중간 지대를 형성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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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문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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