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학 ()

목차
관련 정보
출판
개념
문헌을 대상으로 체계화, 계통화함과 아울러 비평, 해석하는 학문.
내용 요약

문헌학은 문헌을 대상으로 체계화, 계통화함과 아울러 비평, 해석하는 학문이다. 여기에서 문헌이라는 용어는 전적·서적·서책·도서 등을 포괄할 뿐 아니라 금석 등에 기재된 문자들도 포함한다. 다양한 삶의 물증인 문헌을 정리, 편찬, 또는 주석하여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다. 연구 부문은 형태론, 문자론, 생성배경론, 전승·변화론, 고증론, 원전비평론, 번역주석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목록학·판본학·훈고학·교수학 등 학문의 체계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독립된 학문이 아니라, 주학문의 문헌적 이해라는 개별적·보조적 성과에 머무르고 말았다.

목차
정의
문헌을 대상으로 체계화, 계통화함과 아울러 비평, 해석하는 학문.
내용

사람은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언어를 가졌기 때문에 삶의 표현이 구체적으로 가능하며, 그 구체적 표현이 가시적 언어형식(可視的言語形式)으로 영속화, 고정화된 물증이 곧 ‘문헌’인 것이다.

다양한 삶의 물증인 문헌을 정리, 편찬, 또는 주석하여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작업이 곧 ‘문헌학’이다. 그러므로 문헌학은 이미 표출된 삶의 물증이라는 점에서 ‘인식된 것에 대한 인식작업’이라 하겠다.

삶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직접적 학문이 아니라 정신의 소산인 문헌이라는 물증의 체계적 인식이 그 본령이기 때문에 순수학문적 독자성을 지니면서도 방법론적 학문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문헌이라는 용어는 현재 우리들이 구별없이 쓰고 있는 전적(典籍) · 서적(書籍) · 서책(書冊) · 도서(圖書) 등을 포괄할 뿐 아니라 주1 등에 기재된 문자들도 이 개념 속에 포함된다.

문헌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쓰인 것은 『논어』의 팔일(八佾)에 나오는 주2의 말 가운데 “문헌이 부족한 때문이다[文獻不足故也].”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한(漢) · 송(宋)의 학자들은 ‘문(文)’은 사실 기록의 전적을 의미하며, ‘헌(獻)’은 현인들의 논평을 뜻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문헌이 저술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송말(宋末) · 원초(元初)의 학자 주3이 지은 『문헌통고(文獻通考)』였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믿을 수 있는 사실의 서술을 ‘문’, 학사명류(學士名流)들의 사실에 대한 논평을 ‘헌’이라고 하고, 역대 주4과 제도(制度)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이렇게 문물제도 등 문화사상(文化事象)의 총체적 의미로 쓰이던 것이 뒷날 각종 ‘서적’이라는 뜻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었다. 명나라의 성조(成祖)가 만든 『영락대전(永樂大典)』도 처음 『문헌대전(文獻大典)』이라 하였던 것으로 보아도 이때 벌써 ‘서적’이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문헌비고(文獻備考)』 · 『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과 같은 저술은 문물제도라는 문화적 용어로 쓰였지만 『해동문헌록(海東文獻錄)』은 ‘서적’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렇게 볼 때 문헌이라는 용어는 인간의 삶이 가시적 언어형식으로 표출된 물증인데, 삶의 믿을 수 있는 서술과 그 삶에 대한 현명한 논평의 역사기술이라는 본래적 의미로부터, 요즈음에 와서는 그 기록물 자체 즉 서적이라는 의미로 확대, 차용되어 현재에 쓰이고 있다.

이렇게 삶의 물증으로 영속화, 고정화된 다양한 문헌을 정리, 편찬하며 주해하는 데 새로운 관점과 체재를 창출하여 조직화, 계통화하고 그것을 비판, 해석하는 재인식작업을 문헌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접근방법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주어진 대상인 문헌은 어떠한 형식으로 되어 있는가, 그 기사(記寫)의 양태는 어떤가, 그 생성의 문화적 배경은 어떤가, 어떠한 연유 속에 전승되고 변화하였는가, 담긴 내용기록은 정확한 것인가, 어떤 것이 본래의 원본인가, 번역과 주석은 어떠한 양식을 보이고 있는가 등의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헌학연구의 부문으로서 형태론(形態論), 문자론(文字論), 생성배경론(生成背景論), 전승 · 변화론(傳承變化論), 고증론(考證論), 원전비평론(原典批評論), 번역주석론(飜譯注釋論)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을 하려면 어느 학문보다도 보조과학적 지식을 원용(援用)하게 되는데, 가장 밀접한 보조과학은 문자학 · 언어학 · 문예학 · 역사학 · 민속학 · 심리학 등이다.

이와 같은 보조과학의 기초가 없으면 문헌연구는 소기의 성과를 얻기가 어렵다. 문헌연구는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활발하여 목록학(目錄學) · 판본학(版本學) · 훈고학(訓詁學) · 교수학(校讐學) 등 학(學)으로의 체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독립된 학으로서의 체계를 생각한 연구가 아니라, 주학문(主學問)의 문헌적 이해라는 개별적 · 보조적 성과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와 같은 개별적 연구성과를 체계화하고 이론화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문헌학이 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서구의 ‘philology’를 처음 받아들이면서 문헌학이라고 번역하였다.

서양의 문헌학(philology)은 한 민족 또는 여러 민족이 남긴 모든 분야의 유형 · 무형의 문화적 소산, 특히 언어적 소산을 자료로 하여 연구하고 그 결과를 매개로 하여 한 민족 또는 여러 민족의 고대생활과 문화에 관한 전체상을 창조적으로 재현하려고 하는 통일적 문화과학을 뜻한다.

이들의 구체적 실현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통일적 문화과학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그 개념의 변이를 가져왔다.

가령, ‘English philology’라 한다면 영국문헌학이라는 뜻이 아니고 영어학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서구의 ‘philology’를 번역한 문헌학과 우리 나라나 중국에서 쓰는 문헌 그 자체에 대한 재인식인 문헌학과는 개념상 차이를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문헌연구』(유탁일, 아세아문화사, 1989)
『中國文獻學』(張舜徽, 臺北 木鐸出版社, 1983)
『古典文學硏究の基礎と方法』(池田龜鑑, 東京 至文堂, 1969)
주석
주1

쇠붙이와 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ㆍ학자(B.C.551~B.C.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나라 사람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인(仁)을 정치와 윤리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여 덕치 정치를 강조하였다. 만년에는 교육에 전념하여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내고, ≪시경≫과 ≪서경≫ 등의 중국 고전을 정리하였다. 제자들이 엮은 ≪논어≫에 그의 언행과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말샘

주3

중국 송나라 말에서 원나라 초 때의 사학자(1254~1323). 경사에 능하였다. 남송이 망한 후 은거하다 원나라에서 대주유학 교수(臺州儒學敎授)를 지냈다. 고대부터 남송 말까지 제도의 연혁과 변천 과정을 서술한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저술하였다. 다른 저서로 ≪다식록(多識錄)≫ 등이 있다. 우리말샘

주4

제도와 문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