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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朴達)

북한인물

 일제강점기 갑산공작위원회 총잭임자, 동만특별위원회 조선파견지부 책임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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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갑산공작위원회 총잭임자, 동만특별위원회 조선파견지부 책임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가명으로 박일수(朴一洙)·박문상(朴文湘)·김문천(金文天)·이갑수(李甲秀)·현봉길(玄鳳吉)·백록(白綠) 등을 사용하였다. 1910년 함경북도 길주군 덕산면 백원동에서 출생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29년에서 1931년 사이에는 명천소년회, 갑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하였고, 1932년에는 갑산군 운흥면(현재 북한 양강도 운흥군 지역)에서 야학을 운영하며 프롤레타리아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문화운동을 통해 대중의 계몽과 의식화를 도모하려 하였다. 1935년 3월에는 갑산군 운흥면에 활동거점을 정하고 갑산공작위원회 결성에 참가하여 정치부 책임과 총책임을 맡았다.
1936년 재만한인조국광복회에 들어갔으며, 1937년 1월에는 갑산공작위원회를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이 때 군중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켜 조선인민혁명군에 보냈으며, 기관지 『화전민』 발간을 주도하였다.
같은 해 2월에서 5월 사이에 갑산군 보천면과 운흥면 일대 각 마을에 반일회, 반일청년동맹 결성을 지도하였으며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6월 보천보전투에 호응하여 일본군 주둔상태 및 군사기밀 탐지, 통신선 절단, 보급물자 운반 등을 수행하였다.
또 같은 해 8월부터 이듬해인 1938년까지 갑산군 각지에서 아동대·항일회 등의 항일애국단체 결성을 주도하였다. 1938년 8월에는 중국 동만위원회 특별위원회 산하로 조선파견지부를 조직하여 책임자가 되었으나 9월에 변절자의 밀고로 일경에 검거,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1년 8월함흥지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다. 광복 후 출옥하여 귀향하였으며, 회상기 『조국은 생명보다 귀하다』·『서광』 등 혁명적 작품을 집필하였다. 1960년 4월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1964년양강도 보천군 운흥리에 동상이 세워졌고, 1975년 10월 혁명열사릉에 반신상이 세워졌다. 박달은 생전 그의 수기에서 김일성이 조국광복회를 결성한 주인공이라고 입증함으로써 김일성의 각별한 배려를 받았다. 죽은 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루어졌으며, 동상이 세워진 것은 김일성 가계가 아닌 인물로는 최초의 것이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00년)
임채욱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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