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굴 ()

목차
관련 정보
금강 보덕암 전경
금강 보덕암 전경
불교
유적
북한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금강산(金剛山) 법기봉(法起峰) 만폭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보덕이 창건한 사찰. 암자.
목차
정의
북한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금강산(金剛山) 법기봉(法起峰) 만폭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보덕이 창건한 사찰. 암자.
내용

627년(영류왕 10)에 보덕(普德)이 수도하기 위해서 자연굴을 이용하여 절을 창건하였고, 1115년(의종 10)에는 회정(懷正)이 중창하였다.

회정의 중창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회정은 금강산 송라암(松蘿庵)에서 3년 동안 관세음보살을 지극한 정성으로 부르면서 한번 친견(親見)할 것을 원하였다. 어느 날 꿈에 흰 옷 입은 할머니가 나타나서 몰골옹(沒骨翁)과 해명방(解明方)을 찾아가라고 하였다. 여러 해를 찾아 다닌 결과 어떤 산가(山家)에서 해명방을 만날 수 있었고, 그의 딸 보덕각시와 여러 날을 동침하여 화촉까지 밝히게 되었다.

그러나 승려의 신분으로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 그 집을 떠났다가 몰골옹을 만나 해명방은 보현보살이고 보덕각시는 관세음보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가서 그 집을 찾았으나 집도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크게 느끼는 바가 있어서 송라암으로 돌아와 관음기도를 계속하는데 꿈에 흰 옷을 입은 노파가 다시 나타나서 회정의 전신(前身)이 고구려 때의 고승 보덕임을 일러주었다.

보덕은 옛적에 금강산 만폭동 위의 보덕굴에서 수도하였으며 그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회정이 만폭동을 찾아가자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보덕각시가 개울가에서 몸을 씻고 있다가 굴 안으로 들어갔다. 회정은 이곳이 관세음보살의 거처요 보덕이 수행했던 곳임을 깨닫고 굴에 머물면서 열심히 관음기도를 행하였다.

그의 기도와 함께 많은 이적들이 나타나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관음기도도량으로 삼아 참배하기를 끊이지 않았으므로 여러 가지 구조물을 첨가하여 절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 뒤 1540년(중종 36)에는 왕실에서 중수하였고, 1808년(순조 8)에는 율봉(栗峰)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징

이 절은 깎아지른 벼랑의 돌출 부분 위에서부터 쇠사슬을 내려서 그 밑을 쇠기둥으로 버티었다. 그 쇠기둥 위로 판자를 얹고 판자의 다른 부분은 쇠사슬로 엮어서 바위에 기대게 하였다. 본전인 관음전(觀音殿)에 들어서면 흔들거리는 마루와 그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천길 낭떠러지가 보인다. 그곳에서 조금 아래쪽에는 관음상을 봉안한 관음굴이 있다. 암벽의 서쪽을 파서 뚫은 인공석굴로서 백색의 관음상을 안치하였다.

이 관음상은 금강산 안에서 가장 영험 있는 불상으로 유명하다. 또 굴 입구를 덮은 지붕의 정상에는 탑을 안치하였는데 기단부는 없어지고 상륜부(相輪部) 일부와 2층탑신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탑에는 우리나라 탑의 조각에서는 매우 희귀한 본생담(本生譚) 1편이 음각되어 있다.

참고문헌

『동문선』
『신증동국여지승람』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북한의 사찰』(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8)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