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령사 ()

한문학
작품
조선 전기, 박은이 개성의 송악산(松岳山)에 있는 복령사(福靈寺)를 소재로 지은 칠언율시.
작품/문학
작가
박은(朴誾)
내용 요약

「복령사」는 조선 전기 박은(朴誾)이 개성의 송악산(松岳山)에 있는 복령사(福靈寺)를 소재로 지은 칠언율시이다. 정조가 교정한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권 3과 역대의 여러 시선집에 실려 있다. 박은의 시명(詩名)은 그가 살았을 당시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이 작품은 박은의 시 중에서 널리 알려진 절창(絕唱)으로 꼽힌다.

정의
조선 전기, 박은이 개성의 송악산(松岳山)에 있는 복령사(福靈寺)를 소재로 지은 칠언율시.
개설

정조가 교정한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권 3과 역대의 여러 시선집에 실려 있다. 박은(朴誾)의 시명(詩名)은 박은이 살았을 당시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이 작품은 박은의 시 중에서 널리 알려진 주12(絕唱)으로 꼽힌다.

내용

「복령사」 주1에서는 “가람은 신라의 옛적 것이고, 천불상 모두 서축에서 온 것이지[伽籃却是新羅舊 千佛皆從西竺來].”라며 복령사는 신라 때부터 있던 절이고 천불상은 인도에서 온 것임을 밝혔다. 복령사의 유래나 모셔놓은 것들이 모두 대단함을 언급하면서 시상을 일으켰다.

「복령사」 주2에서는 “옛날에 신인은 대외를 찾지 못하였는데, 지금도 복지는 천태산과 흡사하구나[終古神人迷大隗 至今福地似天台].”라 하였다. 황제(黃帝)가 대도(大道)의 상징인 대외를 만나러 구자산(具茨山)으로 가던 도중에 양성(襄城)의 들판에 이르러서 우연히 말을 먹이는 동자를 만나 길을 물었던 주3 「서무귀(徐无鬼)」의 고사를 인용하여, 복령사를 찾아가는 길의 어려움을 드러내었다. 천태는 중국의 천태산으로 신선인 마고할미가 사는 곳이라 한다. 주4 권 41 손작(孫綽)의 「천태산부(天台山賦)」에 “도사를 단구에서 방문하여, 불사의 복지를 찾노라[訪羽人於丹丘 尋不死之福庭]”라는 구절이 있다. 함련에서는 이 구절에 빗대어 복령사의 상징성을 드러내었다. 신선들의 거처를 뜻하는 복지(福地)인 복령사를 신선이 사는 천태산과 같다고 하였다. 이는 곧 복령사가 고금을 통하여 도를 구하는 주5이자 세속을 벗어난 선계임을 형상화한 것이다.

수련이 복령사의 건물과 불상의 외면적인 위용을 표현한 것이라면, 함련은 복령사가 위치한 공간의 상징성을 표현한 것이다.

「복령사」의 주6에서는 “봄날 흐려 비 올 듯하니 새들 먼저 재잘대고, 고목은 무정한데 바람 제 홀로 슬프구나[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라고 하여 시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비와 새, 나무와 바람을 교묘하게 관련시키면서, 앞 연들과는 다르게 복령사에 대한 박은의 생각을 내면의 느낌으로 나타내었다. 허균(許筠)은 이 시의 경련을 두고 신의 도움이 있었다고 격찬하였다. 남용익(南龍翼)은 경련을 이 시의 주7이라 하면서 주8주9를 따른 것이라 평가하였다.

「복령사」의 주11에서는 “만사가 한 번의 웃을 거리도 못 되는데, 청산도 오랜 세월 속 먼지만 가득하구나[萬事不堪供一笑 靑山閱世只浮埃].”라며 시상을 마무리하였다. 긴 세월 속 모든 사물의 무상함을 나타내었다. 이 연에서는 세상과 무관한 듯 존재하는 복령사를 강조하면서 극단적인 대조의 수법을 보였다. 허균은 이 구절을 "세속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초탈하였다[拔俗]"라고 평하였다.

의의 및 평가

박은은 「복령사」를 통해 고사의 사용, 불교와 도교에서 온 소재의 대비와 변용, 사물 간의 미묘한 기미에 대한 포착, 전후 시상의 변화 등의 매우 세련된 솜씨를 보이고 있다. 박은은 「복령사」와 같은 성숙한 경지의 작품을 창작하여 조선 전기 문학이 전성기로 올라서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를 두고 신위(申緯)는 “우리 나라에도 강서파가 있으니, ‘노수춘음’의 읍취헌이다[海東亦有江西派 老樹春陰挹翠軒].”라는 주10를 썼다.

한편, 박은은 연산군(燕山君)훈구파(勳舊派)의 미움을 받고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26세에 요절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성수시화(惺叟詩話)』

단행본

이종묵, 『해동강서시파연구』(태학사, 1995)
홍순석, 『朴誾의 生涯와 詩』(일지사, 1986)

논문

김은정, 「박은론」(『한국한시작가연구』 4, 태학사, 1995)
김현주, 「읍취헌 박은 시의 풍격 연구」(『한문학논집』 23, 근역한문학회, 2005)
홍순석, 「읍취헌 박은 연구(挹翠軒 朴誾 硏究)」(『국문학논집』 11,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3)
홍순석, 「박은 시의 수사기교 연구(1)-拗體의 분석을 중심으로-」(『한국한문학연구』, 한국한문학회, 2004)
주석
주1

한시(漢詩)의 율시(律時)에서, 첫째 구(句)와 둘째 구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

한시(漢詩)의 율시(律詩)에서, 셋째 구(句)와 넷째 구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중국 전국 시대에, 장자가 지은 사상서. 중국의 철학과 선종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간 지혜의 한계를 말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 참된 자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10권 33편. 우리말샘

주4

중국 송나라의 태평흥국 2년(977)에 이방(李昉) 등 12명이 황제의 명에 따라 편집한 중국 설화집. 한(漢)나라로부터 오대(五代)에 이르기까지의 설화, 소설, 전기, 야사 따위를 종류에 따라 92항목으로 정리ㆍ분류하여 수록하고 출전을 밝혔다. 500권. 우리말샘

주5

부처나 보살이 도를 얻는 곳. 또는 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 여러 가지로 뜻이 바뀌어, 불도를 수행하는 절이나 승려들이 모인 곳을 이르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6

한시(漢詩)의 율시(律詩)에서, 다섯째 구(句)와 여섯째 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7

좌선(坐禪)할 때에, 주의가 산만하거나 조는 사람을 막대기로 깨우침.우리말샘

주8

중국 북송의 시인ㆍ서예가(1045~1105).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 기이하고 파격적인 시를 써 송시(宋詩)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강서 시파의 원조이며, 서예가로서 뛰어나 송대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시집으로 ≪산곡시내외집(山谷詩內外集)≫이 있다. 우리말샘

주9

중국 북송 때의 시인(1053~1101). 시를 잘 지었고 고아하고 절개가 있었으나 빈곤하게 살다가 죽었다. 황정견(黃庭堅)의 시풍을 따랐으며 ‘소문 육군자(蘇門六君子)’ 중 한 사람이다. 우리말샘

주10

시 문학 또는 특정 시를 비평하여 읊은 시. 우리말샘

주11

한시(漢詩)의 율시(律詩)에서, 일곱째 구(句)와 여덟째 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2

뛰어나게 잘 지은 시.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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