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년(예종 11)에 각루원(刻漏院)을 개칭한 것이다. 관원으로는 상참(常參)이 겸임하는 지사(知事)가 여러 사람이 있었고, 그 아래로 참외(參外) 3인, 7·8·9품이 각 1인씩 있었다.
기능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중앙 관서의 태사국(太史局)과 마찬가지로 천문·역수(曆數)·측후(測候)·각루(刻漏) 등의 일을 관장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1136년(인종 14) 서경의 관제를 줄일 때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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