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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대회 /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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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거리에 설치된 표적을 총으로 맞혀 그 정확도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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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정한 거리에 설치된 표적을 총으로 맞혀 그 정확도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
내용

사격경기에서 득점력을 높이기 위하여는 고도의 정신집중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사격종목과 경기방법은 남녀별로 사용하는 총기의 종류·구경·탄약·표적·사격자세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될 수 있으나, 크게 소총·권총·클레이·러닝타겟 경기로 구분된다. 소총경기는 공기소총·소구경복사·소구경3자세·스포츠복사·스포츠3자세 등이 있다.

권총경기는 공기권총·자유권총·속사권총·스탠다드권총·센타화이어권총·스포츠권총 사격으로 구분된다. 클레이 사격에는 트랩·스키트·더블트랩경기가 있고, 러닝타겟경기에는 10m러닝타겟, 정상10m러닝타겟, 혼합50m러닝타겟, 정상50m러닝타겟, 혼합10m러닝타겟경기로 구분된다.

화약이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활 대신 탄환을 사용하는 총으로 수렵과 전쟁에 이용하게 되었고, 그 목적으로 익힌 사격기술을 겨루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15·16세기 경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총기의 다종, 다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유럽지역의 특수층에서 사격이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하였다.

사격이 공식 스포츠로서 개최된 것은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대회로서 사거리(射距離) 200m, 300m의 소총경기와 사거리 25m, 30m의 원형표적 권총경기 등 라이플 12종목, 권총 3종목의 사격경기가 채택되었다.

이 후 1904년 제3회 센트루이스대회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대회를 제외하고 매 올림픽대회 때마다 사격경기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897년에는 제1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프랑스 리옹에서 개최되었고, 1907년에는 국제사격연맹이 창설되었다. 이 국제사격연맹은 제1차세계대전때 일시 해체되었다가 1921년 다시 조직되어 지금의 국제사격연맹(U.I.T.)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사격은 1950년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나, 경기가 아닌 사격의 역사는 총포가 도입된 16세기 말부터이다. 그러나 이 당시의 사격은 규칙을 정하였거나 조직화된 운영이 아니었다.

문헌에 기록된 우리나라 사격경기의 시초는 조선시대 말 육군연성학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규모와 규칙 아래 이루어진 사격이 아니라, 단순히 장총으로 서서쏘기·무릎쏘기·엎드려쏘기 등으로 명중률의 우열을 가리는 정도였다.

우리나라가 정식 사격국가로서 발돋움하게 된 것은 광복 이후 1955년 2월 대한사격협회(대한사격연맹의 전신)가 창설된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대한사격협회는 대한체육회에 가입신청 승인을 받고, 대한올림픽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국제사격연맹에 가입을 신청하여 1960년 총회에서 정회원국으로 승인을 받았다.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선수를 파견하기 시작한 것은 1956년 제16회 멜버른올림픽대회 때부터였다.

민간사격단체로는 1967년 서울에어라이플클럽, 1968년 서울대학교사격회, 1973년 한국중고등학교사격연맹 등이 결성되었는데, 한국중고등학교사격연맹의 주최로 1974년 제1회 중고회장기사격대회, 1977년 제1회 충무기대회가 개최됨으로써 본격적인 중고등학생의 사격경기가 시작되었다.

그 뒤 1958년 5월 일본 동경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 6명의 선수를 파견하였고, 196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한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300m 자유소총에서 남상완(南相完)이 1,045점으로 금메달, 50m 자유권총에서 서강욱(徐康旭)이 동메달, 소구경 3자세에서 배병기(裵炳基)가 동메달을 획득하여 국제대회에서 첫 메달을 획득하였다.

1967년 7월 21∼23일까지 동경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공기소총 개인전에서 남상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 센타화이어 권총단체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고, 개인전에서 은메달 6개, 동메달1개로 괄목할만한 전적을 올렸다.

이와 같은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전적과 경험을 토대로 하여 1971년 9월 우리나라 최초로 태릉의 10만 평 대지위에 국제종합사격장을 건설하였다.

이 사격장에서 10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2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스탠다드소총경기에서 남상완, 공기권총경기에서 김달협(金達莢)이 아시아신기록을 수립하였으며, 종합성적 제1위로 최고의 사격국가가 되었다.

1970년대 이래 우리나라의 사격은 경기시설과 기술면에서 눈부시게 발전하여, 마침내 아시아지역 국가로는 처음으로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태릉사격장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는 64개국 910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하였다.

특기할 점은 이 대회부터는 과거의 수동식 또는 반수동식 통제장치에 의한 경기 방식에서 탈피하여 전자식 자동통제장치로 경기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사격이 전자과학화되는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또한 이 대회의 개막식·폐막식에서 행해진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예술의 소개는 사격을 문화재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듬해 1979년 9월에는 우리나라의 태릉국제종합경기장에서 제1회 세계공기총사격선수권대회를 개최하여 25개국 244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기량을 겨루었다.

1986년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아시아경기대회의 사격 부문에서는 금메달 7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를 획득하였다.

여자공기소총경기에서 출전한 박정아(朴貞娥)는 단체와 개인전에서 우승하여 2관왕이 되었다. 특히 그가 쏜 391점은 종전의 아시아 최고기록인 381점을 무려 10점이나 능가하는 기록이었다.

소구경 속사단체경기와 개인전에 출전한 차영철(車榮哲)은 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올림픽대회의 사격 부문에서는 남자소구경 소총복사경기에서 차영철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1990년 9월 22일부터 10월 7일까지 중국의 북경에서 개최된 아시아경기대회에선 금메달 5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를 획득하여 종합성적 3위를 기록하였다.

소구경소총3자세 종목의 단체경기 및 개인경기 모두 1위를 차지한 이은철(李垠澈)이 2관왕, 센타화이어 권총경기에서 589점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박병택(朴炳澤)도 속사권총 단체경기에서 임장수(任章洙), 이종일(李鍾一)과 함께 1위를 차지해 2관왕에 올랐다.

공기소총의 안병균(安秉均)도 658.2점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한편 트랩경기에 참가한 북한이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하고 배원국이 2관왕에 올라 눈길을 모은 대회였다.

1992년 7월 18일부터 8월 6일까지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25회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예상외로 성적이 부진하여 공기소총(여)과 소구경복사(남)에서 여갑순(呂甲順)과 이은철만이 우승해 금메달 2개로 종합 4위에 그쳤다.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제12회 아시아경기대회의 사격 부문에서는 금메달 7개, 은메달 8개 동메달 8개를 획득하였다. 공기소총 남자단체 종목에서 채근배(蔡根培)·김세호(金世浩)·김성수(金成洙)가 1,753점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공기소총 여자개인 종목에선 지난 1992년 올림픽경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던 여갑순을 물리치고 신예 이은주(李銀珠)가 단체경기와 개인경기에서 우승해 2관왕을 차지하였다. 스탠다드소총복사 여자경기에 출전한 조은영(趙恩英)과 소구경소총3자세 경기에 출전한 이은철도 각각 단체와 개인전에서 우승하고 2관왕에 올라 종합성적 2위를 기록하였다.

1996년 제26회 애틀란타올림픽대회의 사격 부문에서는 속사권총 남자단체에서 이장훈(李長熏)·차상준(車尙俊)·김종배(金鍾培)가 1,690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하였고, 개인전에서 이장훈이 570점을 기록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공기소총 남자단체의 임태수(林泰秀)·김영근(金永謹)·배성준(裵聖峻)도 1,759점으로 1위, 공기권총 남자단체경기에 출전했던 이상도(李相導)·김학기(金鶴起)·우승함(禹承咸)도 1,702점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공기소총 부문에 선화여상의 오현정(吳賢貞)은 단체와 개인전에서 우승하고 2관왕에 올라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5개, 은메달 7개, 동메달 8개를 획득하였다.

현재 국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격대회는 대통령하사봉황기쟁탈 전국사격대회를 비롯하여 문화체육부장관기쟁탈 전국학생사격대회·육군참모총장기쟁탈 전국사격대회·종목별 사격선수권대회·충무기쟁탈 전국학생사격대회·전국여성사격대회·중고연맹사격대회·전국실업단사격대회 등이 있다.

참고문헌

『국내·외 사격경기결과집』(대한사격연맹, 1990∼1996년)
『사격술연구』(임변·김기환, 신영출판사, 1983)
『올림픽 ’88사격·승마·펜싱』(한국방송사업단, 1983)
『한국체육백년사』(한국체육백년사편찬회, 1981)
『제42회세계사격대회보고서』(대한사격연맹, 1979)
『고등사격술』(설광진, 창제인쇄공사, 1977)
「경기규칙」(대한사격연맹,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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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곽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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