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지 ()

고대사
문헌
조선후기 학자 유득공이 편찬하고 서유구가 교정 · 필사한 한사군의 역사서.
정의
조선후기 학자 유득공이 편찬하고 서유구가 교정 · 필사한 한사군의 역사서.
개설

편찬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795년(정조 19)경으로 추정된다.

편찬/발간 경위

1910년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활자본으로 유득공의 저서인 『경도잡지(京都雜志)』와 함께 간행하였다.

서지적 사항

이 책은 서유구가 필사한 정본(定本)을 저본으로 하여 인쇄한 것으로, 그 필사본은 일제 때에는 아사미(淺見倫太郎)가 소장했으나 현재는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역사지리학의 전통을 잇고 다시 입연(入燕)을 통한 청(淸)의 고증학적 연구 방법을 수용하여 한사군에 대한 사실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내용

체재는 군현지의 형식을 본받았으며, 표(表)·건치연혁(建置沿革)·산천(山川)·사실(事實)·명환(名宦)·인물(人物)·봉작(封爵)·방언(方言)·토산(土産)·고적(古蹟)·제영(題詠)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머리의 사군표는 중국의 한(漢)·위(魏)·진(晋) 이래 명나라까지와,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한사군 지역의 연혁을 표로 작성한 것이다.

건치연혁에서는 한사군은 본래 모두 우리나라의 땅이라는 전제하에 진번군은 고구려의 땅으로 송화강(松花江) 이동(以東)에, 임둔군은 예(濊)의 땅으로 강릉에, 구현도군은 옥저의 땅으로 함흥에, 현도군은 고구려의 땅으로 청(淸)의 흥경(興京)에, 낙랑군은 고조선의 국도(國都)인 평양에 각각 비정하였다.

유득공의 한사군 위치비정 중 가장 큰 특징은 사군의 위치 중에서 가장 의견이 분분한 진번군지역에 대해 북방 고구려설을 주장한 데 있다. 후일 정약용(丁若鏞)이나 일본의 시라도리(白鳥庫吉)도 여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산천항에서는 내외의 많은 역사서를 참고하되 『고기(古記)』나 『요사(遼史)』의 지리 서술이 잘못되어 있어 믿을 만한 자료가 아니라고 논하고, 여러 자료를 검토하여 산수의 지명과 위치를 밝히고 있다. 특히 개마대산(蓋馬大山)은 백두산(白頭山)에, 분려산(分黎山)은 오대산(五臺山)에, 패수(浿水)는 대동강(大同江)에 비정하였다.

사실항에서는 사군의 시말(始末)을 통하여 고구려·백제·신라가 사군의 지역을 장악하게 되는 과정을 기술하고, 사군지역이 한에 의해 지배당하고 발해 이후 낙랑지역은 고려에 속했으나 현도지역은 여진(女眞)에게 빼앗긴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명환·인물·봉작항에서는 이 지방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방언항에서는 언어학적 관심에서 국어학 연구에 소중한 방언을 기록하고 있으며, 토산항에서는 여러 서적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고증학적인 방법을 통해 토산물을 소개하고 있다. 고적항에서는 금석학적인 관심에서 비문을 소개하였다.

제영항에서는 시를 통하여 사군지역에서 이루어진 문화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유득공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받은 민족적 치욕과 우리 민족의 역사 활동의 무대였던 북방지역의 상실에 대하여, 우리나라 상사의 역사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자국사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했으며 북방 역시 우리 역사의 주무대였음을 강조하여 우리 민족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사군지』에 나타난 북방에 대한 관심에는 양 호란 이후 성립된 힘에 의한 국제질서 속에서 상대적으로 저하된 국력에 대해 반성하며, 북방지역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고취하려는 유득공의 국가의식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숙종대 이후 청나라와의 국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발해 및 북방의 지리에 대해 적극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던 시대적 상황의 소산물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영재집(泠齋集)』
『발해고(渤海考)』(유득공)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열하기행시주(熱河紀行詩註)』
『경도잡지(京都雜志)』
『유득공(柳得恭)의 시문학연구(詩文學硏究)』(송준호, 태학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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