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법인 ()

목차
불교
개념
제행무상 · 제법무아 · 열반적정을 총칭하는 불교교리.
목차
정의
제행무상 · 제법무아 · 열반적정을 총칭하는 불교교리.
내용

법인(法印)은 ‘법의 표지’ 또는 ‘불법의 특징’을 뜻한다. 이 법인사상은 석가모니의 정각(正覺)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어느 불경이든 법인사상에 합치되면 이를 부처님의 진설(眞說)이라 인정하고, 만약 법인사상에 어긋나면 이를 바른 불설(佛說)이 아니라고 판정하였다. 법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은 3종 또는 4종이 있는데, 이를 삼법인 또는 사법인이라 한다.

삼법인은 ① 제행무상(諸行無常), ② 제법무아(諸法無我), ③ 열반적정(涅槃寂靜)이며, 이 세 가지에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더하면 사법인이 된다. 대부분의 경전에서 사법인을 무상·고·무아·열반의 순으로 열거하고 있다.

원시경전에는 일반적으로 삼법인 또는 사법인을 체계화시킨 설은 없지만, 무상·고·무아에 관해서는 많은 경전에서 설하고 있다. 이를 유위(有爲)의 삼상(三相)이라고 하였다. 이 유위를 벗어남으로써 열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상 네 가지로 사법인의 교설이 성립되게 된 것이다.

원시불교 이래 대승불교에 걸쳐 가장 중요한 게(偈)로서 무상게(無常偈)가 있다. 이를 범어(梵語) 원본대로 번역하면 “제행은 무상하여 생과 멸의 법이 있으며, 생하여 끝나서는 멸한다. 이들 제행의 적멸은 낙이다(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己 寂滅爲樂).”이며, 이것은 제행무상과 열반적정의 법인을 설한 것으로, 불교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되어 있다.

중국 천태종 등의 일부 종파에서는 삼법인이 소승불교의 설이므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는 일실상인(一實相印)으로써 법인을 삼는다고 주장하였으며, 제법실상을 십여시(十如是)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삼법인과 십여시에 의한 제법실상은 실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여 삼법인설이 보편적으로 유통되었다. 삼법인 각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행무상:제행이란 생멸변화하는 일체의 형상법을 가리키며, 유위(有爲)와 같은 뜻이다. 모든 현상은 잠시도 정지하지 않고 생멸변화하므로 제행무상이라 한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것은 눈 앞의 사실로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며, 특별한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법인 중에는 제행무상을 가장 앞에 두게 된 것이다.

‘무상을 설하는 의의는 이론적으로는 무상하기 때문에 고이다.’라든가 ‘무상하기 때문에 무아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고와 무아의 이유로서 무상이 설해졌다. 전통적으로 무상이라는 말에는 노(老)·병(病)·사(死) 등과 같이, 사태가 나쁘게 변화한다는 비극적인 뜻으로 연상되는 경우가 많지만, 무상이란 사태가 나쁘게 변화하는 것뿐 아니라, 좋게 전개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무상하기 때문에 슬픈 일도 생기지만, 무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행복으로 돌릴 수도 있다. 고뇌를 해소하고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이끄는 종교의 가르침이 설해지는 것도 제행무상이라는 기본적인 진리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 무상의 체득을 위한 실천행법을 불교에서는 무상관(無常觀)이라고 한다.

무상관이 설해지는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모 형제나 이웃의 죽음에 의해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고 종교심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있을 때 자기반성을 하게 되고, 그 반성에 의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바른 눈이 트이며, 자기와 세상과의 결합관계를 알게 됨으로써 종교심이 움트는 것이다. 둘째, 무상을 생각함으로써 집착이나 교만심을 버리게 된다. 셋째, 무상관에 의해 시간을 아끼고 정진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② 제법무아:제법의 법은 무아성(無我性)의 것을 뜻하며, 이 제법은 제행과 마찬가지로 현상으로서의 일체법을 뜻한다. 무아는 ‘아가 없다.’, ‘아가 아니다.’는 뜻이며, 아(我)란 생멸변화를 벗어난 영원불멸의 존재인 실체 또는 본체를 뜻한다. 이와 같은 실체와 본체는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하는지 아닌지가 분명하지 않은 무기(無記)라 하여, 불교에서는 이를 문제삼는 것을 금지하였다.

이러한 뜻에서 제법무아는 모든 것이 ‘아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제행무상이란 누구에게나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지만, 제법무아는 불교 이외의 종교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불교 특유의 교설이다.

석가모니 당시의 인도 종교들은 모두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영원한 존재로서의 본체를 인정하였다. 우주적인 실체를 범(梵, brahman)이라 하고, 개인적인 실체를 아(我, atman)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이를 인식할 수도 없고, 그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다고 하여 무기(無記)라 설하고, 또 그러한 본체와 실체는 현상계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수행이나 해탈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③ 열반적정:열반은 ‘불어 끄는 것’ 또는 ‘불어서 꺼져 있는 상태’라는 뜻으로, 번뇌의 불을 불어서 끄는 것이다. 불교의 이상(理想)은 곧 열반적정이다. 석가모니가 인생의 고(苦)를 불가피한 것으로, 우선 단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종교적 안심(安心)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삼법인과 합하여져서 사법인을 이루는 일체개고는 일체고행(一切苦行) 또는 제행개고(諸行皆苦)라고도 한다. 이 법인은 일체의 현상법이 고임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즉, 모든 현상법이 무상하기 때문에 고라고 한 것이다.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명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졌지만, 일체개고의 명제는 무조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상계는 고뿐만 아니라 낙도 있고 불고불락(不苦不樂)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의 3고 가운데 일체개고에 해당하는 것은 행고뿐이라고 보았다. 행고란 현상의 법을 고라고 한 것으로, 현상의 법을 반드시 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불교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윤회(輪廻)와 미혹의 생활 자체가 고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체개고는 미혹한 범부에게만 해당되며, 미혹이 잔존하는 이상은 일체의 현상이 고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일체개고를 법인으로 설정한 까닭은 현실의 고와 무상과 부정 등을 관찰하여 현실의 고뇌를 벗어나서 안락한 이상의 경지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참고문헌

『불교학개론』(김동화, 백영사, 1965)
『불교개론』(무진장, 홍법원, 1981)
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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