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역총해 ()

삼역총해
삼역총해
언어·문자
문헌
사역원에서 청어 학습 및 청학과시용으로 1774년에 간행한 교재. 청어학습서.
정의
사역원에서 청어 학습 및 청학과시용으로 1774년에 간행한 교재. 청어학습서.
개설

초간본은 전하지 않고 『중간삼역총해』만 볼 수 있다. 『중간삼역총해』는 검찰관 김진하(金振夏)·고사언(高師彦)이 초간본을 수정하고 서사관(書寫官) 장재성(張再成)이 썼다. 만문(滿文) 『삼국지』 가운데 10회분을 가려 뽑아 만주어음을 한글로 전사하고, 번역을 붙인 청학과시용(淸學科試用) 교재이다.

편찬/발간경위

『중간삼역총해』에는 이담(李湛)의 「중간삼역총해서」와 아울러 초간본의 「삼역총해서」가 있고, 초간과 중간의 간기(刊記)가 붙어 있어 초간본의 간행경위도 알 수 있다.

청나라는 1632년에 유권점 만주자를 제정하여 사용하고 있었지만, 1639년(인조 17)까지도 규범적인 표기법이 정착되지 못하였다. 이 때에 신계암(申繼黯)은 여진문자(女眞文字)로 쓰여졌던 것으로 보이는 14종의 여진학서(女眞學書) 중에서 『거화(巨化 또는 去化)』·『구난(仇難)』·『팔세아(八歲兒)』·『소아론(小兒論)』·『상서(尙書)』 등 5종을 만주자로 사출(寫出:글씨나 그림 따위를 베끼어 냄)하여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청어학습서로 만들었다.

청 순치(順治) 초년(1644년)부터 만문 표기법의 규범이 정비되어, 우리나라의 청학서도 개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1680년(숙종 6) 최후택(崔厚擇)·이집(李城)·이의백(李宜白) 등이 『삼역총해』 10권과 『청어노걸대』 8권을 새로 편찬하는 일을 시작하였고, 전부터 사용하던 5종의 청학서 중에서 『팔세아』·『소아론』 각 1권도 개정하였다. 그리고 1684년(숙종 10)에는 이미 새로운 청학서 4종 20권이 완성되어 과시용교재로 사용되었다.

『청어총해』는 『삼역총해』 10권, 『청어노걸대』 8권, 『팔세아』 1권, 『소아론』 1권의 총 20권에 달하는 청학서로써 필사본으로 전해오다가, 1703년(숙종 29)에 수정관(讐整官) 김세홍(金世弘) 등과 서사관(書寫官) 이세만(李世萬) 등에 의하여 판하본(板下本)이 만들어지고, 박창유(朴昌裕) 등 6인이 연재(捐財)하여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규장각도서와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아라아시문고(濯足文庫)에 완질본이 전하며, 대영도서관(The British Library)에 권4가 사본(寫本)으로 채워진 한질이 전한다.

또한, 『재불한국관계문헌목록』(국회도서관, 1969)에 10책 완질본이 전하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어느 도서관에 있는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이 중 규장각본이 1956년 연희대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팔세아』·『소아론』·『동문유해』와 합책되어 영인, 출판되었다.

서지적 사항

10권. 목판본. 이 책의 원간기(原刊記)는 ‘강희사십이년계미(康熙四十二年癸未:1703년, 숙종 29) 구월일개간(九月日開刊)’으로 되어 있고, 『통문관지』권8 「집물조」에도 이 판에 대해서 ‘강희계미 영청학관(令淸學官)……개간(開刊)’으로 되어 있으나, 「삼역총해서(三譯總解序)」의 연기(年記)가 ‘갑신(甲申, 1704년) 중하상완(仲夏上浣)’으로 되어 있음을 보면, 이 책은 실제로 1704년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판본에 대해서는 『통문관지』권8 「집물」 협주(夾注)를 보면, 이 책들에 대한 기록이 ‘이활자개간(以活字開刊)’으로 되어 있어, 이 책을 비롯한 『청어총해』 20권이 활자본이었던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책의 「집물」에는 ‘판(板)’으로 실려 있는 사실과, 「삼역총해서」에 ‘기궐시서(巧槨是書)’ 또는 ‘구공침재(鳩工十梓)’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책들은 목판본이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 4종 20권의 청학서들은 1765년에 『청어노걸대』가 신석(新釋)·개간(改刊)되었고, 이어서 『삼역총해』도 중간을 보게 되었다. 『통문관지』권8 「집물」과 서적 속에는 이 『중간삼역총해』를 『신석삼역총해(新釋三譯總解)』로 적고 있다.

내용

『삼역총해』의 저본은 1650년에 24권으로 각본(刻本)된 청(淸) 키충거(祁充格, Kicungge) 봉칙 역(奉勅 譯)의 만문(滿文) 『삼국지』로 추정된다.

1979년에 영인하여 간행된 간년미상(刊年未詳)인 만한합벽(滿漢合璧)의 『삼국지』에는 ‘수상고본, 이탁오 원평, 삼국지, 녹음당장판(繡像古本, 李卓吾 原評, 三國志, 綠蔭堂藏版)’이라는 한문표지가 붙어 있는데, 그 속의 만문은 『삼역총해』의 표기법과 어구가 다른 곳이 간혹 있고, 보다 정제된 만문이어서 『삼역총해』의 저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연철표기와 분철표기가 모두 나타나지만, 곡용의 경우에는 특히 분철표기되는 경향이 크다.

ㅅ계 합용병서만이 사용되고 유기음은 유기음을 ‘난나치’와 같이 그대로 표기하기도 하고, ‘놉흔’, ‘갑파’과 같이 ‘평음+ㅎ’, ‘평음+유기음’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종성은 7종성법을 따른 표기가 대부분이지만, ‘ㄹ’로 시작되는 자음군인 경우에는 ‘ᄆᆞᆰ고’처럼 표기에 반영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삼역총해』는 당시의 언어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어휘나 문법 형태들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국어와 만주어에 가각에 대한 연구는 물론 두 언어를 비교언어학적 측면에서도 살펴는 데에 기초가 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동문관지(通文館志)』(권7, 「인물」 참조)
『역관상언등록(譯官上言謄錄)』(인조 17년 기묘 5월 11일조 참조)
『만문본 삼국지(A Manchu Edition of Ilan gurun i bithe)』(Chinese Material Center INC, U.S.. 1979)
「조선시대 청학서 삼역총해의 음독과 어학적인 측면 고(考)」(박상규, 『아시아문화연구』 10, 2006)
「삼역총해 저본고」(기시다 후미타카, 『알타이학보』 2-1, 1990)
「삼역총해 어휘 색인」(전재호, 『어문논총』 11-1, 1977)
「팔세아·소아론·삼역총해·동문유해 해제」(민영규, 『팔세아·소아론·삼역총해·동문유해』(영인본), 연희대학교동방학연구소, 1956)
The Study of Foreign Languages in the Yi Dynasty(1392∼1910)(Ki-Joong Song, Journal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No.54∼56, 한국연구원, 1981∼1982)
Present State of Preservation of Manchu Literature(KANDA, Nobuo, Memoires of the Research Department of the Toyo Bunko, No.26, 1968)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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