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배불정책으로 인해 사원의 전답과 노비가 몰수되고 교단이 통폐합되자 이에 항의하다가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그러자 묘향산에 있던 그의 동생 적휴(適休)가 신내(信乃) 등 9인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조선의 배불정책의 실상을 알려 명나라 황제의 동정과 지원을 받고자 하였다. 조선 초기의 배불정책에 항의한 대표적 승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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