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덕총록 ()

고전산문
작품
조선 후기에 정씨부인(丁氏夫人)이 지은 채제공(蔡濟恭)의 전기.
정의
조선 후기에 정씨부인(丁氏夫人)이 지은 채제공(蔡濟恭)의 전기.
구성 및 형식

한글 필사본. 본래는 권1과 권2가 있었던 듯하나, 현재는 권2만 전한다. 표제 ‘상덕총록’은 상공(相公) 채제공의 덕을 모두 기록한 책이란 뜻이다.

작자는 채제공의 둘째 며느리이며 정약용(丁若鏞)의 서(庶) 누이동생인 정씨 부인으로, 채제공이 56세에 측실로부터 낳은 채홍근(蔡弘謹)의 부인이다. 그런데 혼인한 지 2년도 채 못 되어 남편이 죽자, 정씨 부인은 19세의 청상과부로 시아버지를 정성스레 섬기며 이 전기를 썼다.

내용

현전하는 권2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영조 때의 문신 김상철(金尙喆)의 아들 김우진(金宇鎭)이 홍국영(洪國榮)의 역모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는데, 1791년 김상철이 죽자 그를 풀어 주고 돌아가 장례를 치르라고 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 뒤 1792년 겨울, 채제공이 천주교의 진산사건(珍山事件)으로 일시 장단(長湍)에 부처되었다가 그 해 동짓날 돌아올 때, 정조가 홍제원·모래고개[沙峴]를 거쳐 서울로 오는 길목마다 발발이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묻는 일, 정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을 수원 현륭원(顯隆園)으로 옮기고 화성 성역(城役)을 시작하면서, 그 일을 채제공에게 맡긴 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볼 때, 정조가 채제공을 매우 신임했음을 알려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글에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통한이 채제공의 시각을 통해 넘쳐흐르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고 통곡하는 모습을 “천원(遷園)하실 때에 우러러 우리 성상의 입으신 바 옷소매에 눈물이 흘러 피되어 점점이 붉어 젖으심을 보오니.” 하고 기록한 대목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뒤 아무도 모르게 채제공에게 써 준 ‘금등(金滕)의 문자’에 대해서도 약간 밝히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글은 「한중록」·「의유당관북유람일기」와 더불어 품격 높은 여류 문학의 하나로,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시대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문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원본은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채수용가(蔡洙用家)에 소장되어 있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9월 10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전기문학의 새 봉우리」(하성래, 『문학사상』61, 19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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