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례비요 ()

상례비요
상례비요
가족
문헌
조선시대 학자 김장생(金長生)이 신의경(申義慶)의 초본을 바탕으로 여러 『가례』 연구서와 조선의 시속(時俗)을 반영하여 상례와 제례를 시행할 때 지침이 되도록 편찬한 예법서.
문헌/고서
편찬 시기
1583
간행 시기
1621, 1648
저자
김장생
권책수
불분권 1책, 2권1책, 2권2책
권수제
상례비요
판본
목판본
표제
상례비요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등
내용 요약

『상례비요(喪禮備要)』는 조선시대 학자 김장생(金長生)이 신의경(申義慶)의 초본을 바탕으로 『가례』의 상례와 제례를 기반으로 하고, 예경 및 후대 중국과 조선의 『가례』 연구서를 참고한 뒤 조선의 시속(時俗)을 반영하여 상례와 제례를 시행할 때 지침이 되도록 마련한 예법에 관한 책이다. 조선의 시속을 반영하여 『가례』를 현지화하는 동시에 고례(古禮)를 중심으로 『가례』를 보완하는 작업을 수행하여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민간 의례 관련 지침을 한 단계 진전시켰을 뿐 아니라, 이후 조선 민간 의례서의 연구를 선도한 저술이다.

정의
조선시대 학자 김장생(金長生)이 신의경(申義慶)의 초본을 바탕으로 여러 『가례』 연구서와 조선의 시속(時俗)을 반영하여 상례와 제례를 시행할 때 지침이 되도록 편찬한 예법서.
저자 및 편자

『상례비요』는 저자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는 저술이다. 17세기의 경우, 신의경(申義慶:1557~?)의 초본(草本)을 김장생(金長生)이 첨삭, 개정, 주1, 주2한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초 김장생을 문묘(文廟)주3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러한 사실이 논란이 되면서, 19세기에 이르면 김장생이 저술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바뀌게 된다. 반대로 현대의 연구자들은 김장생에 의해 보완되었다고 하더라도 초고가 신의경에 의해서 저술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신의경을 저자로 보는 입장을 대체로 지지한다. 다만 『상례비요』와 신의경의 초본(『상례통재(喪禮通載)』)을 비교 및 분석한 연구에서는 『상례비요』가 신의경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되 성찰적으로 발전시킨 저술로서 단순히 첨삭, 개정, 윤색, 산정한 정도에서 그치는 저술이 아니며, 민간 의례서의 대부분이 『가례』 또는 전범이 되는 선행 연구를 기본으로 하여 저자들의 입장에 따라 일부 개정하고 보완하는 방식으로 저술된다는 점에서 김장생의 저술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초간본 3종이 발견되었고 이를 초본, 개정본과 비교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면 저자 관련 논란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서지사항

돈암서원본 계통과 제주향교본은 권(卷)을 나누지 않은 1책본이지만, 함경감영본, 평안감영본, 경상감영본 계통은 2권의 1책본 또는 2권의 2책본이다. 모두 목판본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김장생은 부친상을 치르던 중인 1583년(선조 16)에 『상례비요』를 완성하지만 수정 및 보완 작업을 지속하다가 1620년(광해군12) 주4 유생들이 『상례비요』를 간행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문을 작성하는 한편 신흠(申欽)에게 발문을 부탁하여 1621년(광해군13)에 간행하도록 한다. 이것이 초간본이다. 초간 이후에도 개정 및 보완 작업을 진행하지만 마치지 못하고 사망하자 아들인 김집(金集)의 주도로 송준길(宋浚吉), 윤선거(尹宣擧), 이유태(李惟泰), 윤증(尹拯), 송시열(宋時烈) 등의 도움을 받아 1648년(인조 26)에 돈암서원(遯巖書院)에서 개정본을 간행한다. 이후 1666년(현종 7) 민정중(閔鼎重)에 의해 함경감영(咸鏡監營)에서, 1669년(현종10) 민유중(閔維重)에 의해 평안감영(平安監營)에서, 1695년(숙종 21) 제주향교(濟州鄕校)에서, 1744년(영조 20)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 간행된 간본이 확인된다. 돈암서원 개정본은 을유(乙酉)년(미상)과 을축년(1925)에 중간되고, 함경감영본은 1689년(숙종 15)에 중간되며, 경상감영본은 1782년(정조 6), 1812년(순조 12), 1848년(헌종 14), 1888년(고종 25)에 개간(改刊)된다.

구성과 내용

돈암서원본 계열과 제주향교본은 불분권(不分卷) 1책이지만, 함경감영본과 평안감영본, 그리고 경상감영본의 경우는 2권의 1책본 또는 2권의 2책본이다. 평안감영본은 ‘문상(聞喪)’으로부터 하권이 시작되고, 나머지는 ‘치장(治葬)’으로부터 시작된다. 경상감영본의 경우 주5주6을 제외하고 체제가 일정하므로 이를 기준으로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책

  • 상례비요서(喪禮備要序): 김장생(金長生, 1620년), 소서(小序): 김집(金集, 1648년)
  • 상례비요범례(喪禮備要凡例)
  • 상례비요도(喪禮備要圖): 사당전도(祠堂全圖) 등 117개
  • 상례비요상(喪禮備要上): 초종(初終), 습(襲), 소렴(小斂), 대렴(大斂), 성복(成服), 문상(聞喪)

제2책

  • 상례비요하(喪禮備要下): 치장(治葬), 계빈(啓殯), 급묘(及墓), 성분(成墳), 반곡(反哭), 우제(虞祭), 졸곡(卒哭), 부(祔),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禫), 길제(吉祭), 개장(改葬), 사당지의(祠堂之儀), 시제(時祭), 기일(忌日), 묘제(墓祭)
  • 상례비요발(喪禮備要跋): 신흠(申欽,

범례(凡例)주7는 본서의 편찬 원칙을 밝힌 것으로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째, 『상례비요』는 『가례』를 근본으로 하되 예경(禮經)과 조선의 주8 그리고 주자의 정론에 근거하여 보완하고 개정하며 재배치하였다. 둘째, 『가례』에 수록된 주9에 오류가 있는 경우 이를 개정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도설을 첨가하였다. 그 결과 『가례』에는 28개에 불과했던 도설이 117개로 증가하였다. 셋째, 상례(喪禮)의 절차마다 필요한 기물의 종류와 수량을 기록하되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 기물은 조선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바꾸어 수록하였다. 넷째, 『가례』의 본문은 한 줄의 큰 글자로 기록하고 저자가 보충한 것은 두 줄의 작은 글자로 기록하거나 아래위에 ‘⁐’와 같은 표시를 하였다. 아울러 인용한 여러 설들은 서명(書名)을 기록하여 전거를 밝히고, 저자의 견해일 경우에는 ‘우(愚)’자 또는 ‘안(按)’자를 써서 구별하였다.

상권에는 상례의 절차 가운데 초종부터 문상까지, 하권에는 치장으로부터 담제까지의 절차와 『가례』에는 없는 길제주10의 절차, 그리고 제례(祭禮)에 해당하는 사당지의, 시제, 주11, 묘제의 절차를 수록하였다. 개장은 명대(明代) 구준(丘濬)의 『가례의절(家禮儀節)』을 준용한 것이다. 길제는 예경과 주자의 정론에 근거하여 『상례비요』에서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중국의 민간 의례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상례를 마치고 나면 곧바로 제사를 지내게 되기 때문에 제례에 해당하는 절차를 이어서 수록하였다. 상례의 절차인 초종에서 담제까지의 내용에서 특징적인 것은 첫째, 빠뜨려서는 안 되는 절차임에도 『가례』에 빠진 것을 예경을 근거로 보완하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초종에 주12와 철족(綴足)을 하고 심의(深衣)를 착용하도록 하며, 습에 모(冒)를 사용하고 얼음을 쓰도록 하며, 소렴을 마친 후에 질대(絰帶)를 착용하도록 한 것이 그것이다. 둘째, 예경과 어긋나는 규정을 개정하였다는 것이다. 상중에 상주가 출타할 때 착용하는 주13주14주15로 바꾼 것이 그것이다. 셋째, 번잡하게 나열된 표제어를 의식의 진행을 고려하여 간략하게 정리하였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례』에 ‘목욕, 습, 전, 위위, 반함’으로 되어 있는 표제어를 ‘습’으로 줄이고, ‘천구, 조조, 전, 부, 진기, 조전’, ‘견전’, ‘발인’으로 되어 있는 것을 ‘계빈’으로 통합하며 ‘영좌, 혼백, 명정’과 ‘조석곡전, 상식’ 등으로 되어 있는 것을 모두 생략하고 본문의 내용만 기록한 것이 그것이다.

의의 및 평가

16세기 중반 이후 본격화되는 민간 의례 부분인 『가례』에 대한 연구는 상례와 제례를 중심으로 주16의 표준 지침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17세기 초반 『상례비요』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내고 18세기 중반 이후 그 절정에 도달한다. 상례와 제례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상례비요』는 조선의 시속을 반영하여 『가례』를 현지화하는 동시에 고례(古禮)를 중심으로 『가례』를 보완하는 작업을 수행하여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민간 의례 관련 지침을 한 단계 진전시킨 저술이다. 이후 간행되는 행례서들은 학파의 분기를 넘어서서 『상례비요』를 본보기로 그 범위를 관례(冠禮)혼례(婚禮)로까지 확대하고 내용적으로 정비하는 작업을 예외 없이 진행한다.

참고문헌

원전

『상례비요(喪禮備要)』
『상례통재(喪禮通載)』

단행본

고영진, 『조선중기예학사상사』(한길사, 1995)

논문

김향숙, 「기호사림 예서의 서지적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5)
장동우, 「『상례통재』의 예학사적 위상」(『태동고전연구』 32,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4)
장동우, 「행례서를 통해 본 조선후기 『가례』 연구의 특성 및 함의」(『국학연구』 36, 국학진흥원, 2018)
주석
주1

윤이 나도록 매만져 곱게 함. 우리말샘

주2

쓸데없는 글자나 구절을 깎고 다듬어서 글을 잘 정리함. 종이가 없던 옛날에 대나무 쪽 따위에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들었던 데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샘

주3

공신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 우리말샘

주4

호남(湖南)과 호서(湖西)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5

본문 위쪽에 적는 주석. 우리말샘

주6

손해와 이익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7

책의 첫머리에 그 책의 내용이나 쓰는 방법 따위에 관한 참고 사항을 설명한 글. 우리말샘

주8

그 시대의 풍속. 우리말샘

주9

그림을 곁들여 설명함. 또는 그 책. 우리말샘

주10

다시 장사 지냄. 우리말샘

주11

해마다 돌아오는 제삿날. 우리말샘

주12

염습하기 전에, 입에 낟알을 물리려고 시신(屍身)의 이를 벌리는 일. 우리말샘

주13

상례(喪禮)에서, 베 직령(直領)에 묵립과 묵대를 갖추어 입는 옷차림.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돌아간 어머니의 담제(禫祭) 뒤와 생가(生家) 부모의 소상(小祥) 뒤에 입는다. 우리말샘

주14

예전에, 주로 상제가 밖에 나갈 때 쓰던 갓. 가는 대오리를 결어서 큰 삿갓 모양으로 만들되 네 귀를 우묵하게 패고 그 밖은 둥그스름하게 만들었다. 우리말샘

주15

천을 짠 후에 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아니한 베. 우리말샘

주16

예식을 행함. 또는 그런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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