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전신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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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 준공된 한성(지금의 서울)∼의주 간의 전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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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885년에 준공된 한성(지금의 서울)∼의주 간의 전신선.
내용

우리나라 최초로 가설된 전선이다. 이 전신선은 가설 직전에 의주전선합동(義州電線合同)이라 하여 청나라와 조약을 맺고, 그 조약에 의하여 청국의 자금(이 자금은 뒤에 전부 상환하였음)과 당시 청나라에 진출해 있던 덴마크 소속의 대북전신주식회사의 기술, 그리고 우리나라 기술자의 합작으로 이루어졌다. 가설 이후에는 의주전선합동에 명시된 것과 같이 일정 기간 청나라에서 대리운영하게 하였다.

우리 정부가 소요 전주와 인력의 제공, 전신선로의 보호에 관여하는 등 한중합작으로 건설되었다. 이 전신선의 가설공사는 1885년 6월 의주전선합동이 체결되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다.

전선가설 착공일이 언제로 예정되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측의 준비사항인 전주의 준비와 순찰병의 차출 등이 그 해 7월 말까지 완료되어 공사진행에 지장이 없게 하였고, 청나라측에서도 가설요원과 기기 및 물료와 경비 등을 갖추어 8월 1일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이때 온 가설요원수는 약 150명이었는데, 이 중 미륜사(彌綸斯, Muehlensteth,H.J.)와 사미은(謝彌恩, Chiren, C.S.) 및 성명 미상의 덴마크인 기술자 3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중 미륜사는 1905년까지 우리 나라에 남아 있으면서 초창기 전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운(尙澐) · 김학우(金鶴羽) 등의 기술자가 참여하였는데, 이들은 각각 전신가설 전에 청나라와 일본에서 전신기술을 습득한 우리 나라 최초의 기술자들이었다. 특히, 김학우는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주1를 고안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양국의 가설준비가 완료되어 1885년 8월 3일 전선 가설에 착수하였다. 8월 15일경 양화진 현재의 양화대교 약간 북쪽 지점을 통과하였고, 8월 19일 한성 경내의 공사가 마무리되어 서울과 인천간의 경인전신선이 준공되었다.

다음날인 8월 20일 한성전보총국(漢城電報總局))이 개국하였고, 9월 28일 경인간 전신선이 개통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전기통신 개통일로 기념하고 있다.

경인간 전선가설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성에서 의주간의 준비도 완료되어 8월 29일 황해도 평산에, 9월 25일 평안남도숙천에 이르고, 10월 6일 의주의 운유정까지 이르는 총 연장 1,053리(약 413.5㎞)의 서로전신선 가설공사가 완공되었다. 공사의 진척과 함께 평양과 의주에 전보분국이 설치되었다.

평양분국은 9월 22일 개국, 9월 28일부터 업무가 시작되었고, 의주분국은 10월 16일 개국, 10월 18일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 이와 같이, 서로전신선이 가설되어 업무가 개시됨에 따라 주2를 이용하던 전근대적인 통신방식에서 전기통신이라는 근대적 통신방법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신선은 중국은 물론 중국을 경유하여 세계 각국과 전신에 의한 통신의 길을 열어 줌으로써 국제전신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187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온 개화파들의 의지가 일반 국민들에게 가시적으로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조선전신지』(일본체신성 통신국, 1895)
『중조약장합편(中朝約章合編)』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일기(通理交涉通商事務衙門日記)』
『전안(電案)』
『한국전기통신 100년사』(체신부, 1985)
김연희, 『전신으로 이어진 대한제국, 성공과 좌절의 역사』(혜안, 2018)
주석
주1

점과 선을 배합하여 문자ㆍ기호를 나타내는 전신 부호. 미국의 발명가 모스가 고안한 것으로, 특히 무선 전신ㆍ섬광 신호 따위에 쓰인다. 우리말샘

주2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신호로 올리던 불. 전국의 주요 산정(山頂)에 봉화대를 설치하여 낮에는 토끼 똥을 태운 연기로, 밤에는 불로 신호를 하였는데, 상황에 따라 올리는 횟수가 달랐다. 우리말샘

집필자
진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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