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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徐哲)

북한인물

 해방 이후 인민군 총정치국장,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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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해방 이후 인민군 총정치국장,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정치인.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함경북도 온성군의 빈농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하얼빈(哈爾濱)에서 의학전문학교를 나왔고, 항일유격대 시절 그 인연으로 군의(軍醫)로 활약하였다. 1930년 5월, 남만(南滿)에서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였고, 1932년 11월 항일유격대에 가입하여 내내 남만을 무대로 한 동북항일연군 제1군에서 활동하였으며,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군의처장으로도 활동하였다. 동북항일연군 교도려(敎導旅)에서는 연장급 지휘관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 북한에서 지방당과 정권기관에서 일하였다. 1947년 9월에 대남공작 및 게릴라 양성소로 세워진 강동정치학원의 군사부원장을 지냈고, 1955년부터 월맹대사를 지냈다. 그는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비교적 능력도 뒤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광복 후 그의 위치가 항일유격대 시절의 위치에 비해서 비교적 낮았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일성의 그에 대한 신임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가 1958년 9월에 ‘반종파투쟁’으로 숙청된 최종학(소련파)을 대신해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되었고, 김정일(金正日) 후계체제 문제를 둘러싸고 1977년 인민군 총정치국장 이용무가 숙청당하자 역시 그 해 8월부터 1979년 8월까지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다시 맡은 데서 증명된다.
1960년 9월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4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선임되었다. 1973년 1월부터 1977년 7월 사이에, 그리고 1979년 8월부터 1989년 7월 사이에 당 검열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69년 12월 이래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을 지냈고, 1992년 9월 30일 병고 끝에 사망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김일성과 민주항일전쟁』 ( 와다 하루끼 저,이종석 옮김,창작과비평사,1992)

  • 조선로동당연구  (이종석, 역사비평사, 1995)

  • 東北抗日遊擊日記  (周保中, 北京 人民出版社, 1991)

  • 東北地區革命歷史文件匯集  (甲)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01년)
이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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