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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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육주비전(六注比廛) 가운데 주로 비단을 취급하던 시전(市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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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육주비전(六注比廛) 가운데 주로 비단을 취급하던 시전(市廛).
내용

차음(借音)에 따른 표기로 선전(線廛) 또는 섬전(閃廛)이라 쓰기도 하였다.

선전을 입전(立廛)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비단인 선단(線緞, 閃緞 또는 線緞)의 ‘선’을 서다[立]로 차훈하여 불렀다고 한다. 유분각전(有分各廛) 중에서도 가장 많은 10분의 국역부담을 지고 있었다. 선전이 취급한 물종을 「한양가(漢陽歌)」에서 들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공단(貢緞)을 비롯하여 대단(大緞)·사단(紗緞)·궁초(宮綃)생초(生綃)·설한초(雪寒綃)·운문대단(雲文大緞)·일광단(日光緞)·월광단(月光緞)·용문갑사(龍文甲紗)·상사단(相思緞)·통해주(通海紬)·장원주(狀元紬)·포도대단(葡萄大緞)·금선단(金線緞)·설사(雪紗)·빙사(氷紗)·호로단(晧老緞)·만수단(萬壽緞)·우단(羽緞)·광월사(光月紗)·아롱단(阿籠緞)·팔양주(八兩紬)·쌍문초(雙文綃)·흑저사(黑紵紗)·남추라(籃縐羅)·흑색궁초(黑色宮綃) 등이 그것이다.

위와 같은 많은 품목은 수많은 수요자는 물론이거니와 사치품을 요구하는 부유층의 수요도 컸기 때문에 거액의 자본이 필요한 시전이었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일본으로부터 수입한 외국물자가 진열, 판매될 정도로 고도의 재원도 마련되었다. 선전은 육의전 중에서 국역부담을 가장 많이한 시전으로 부상대고(富商大賈)인 시정(市井)들은 호사가 극심하였다고 한다. →육주비전

참고문헌

『만기요람(萬機要覽)』
『청구시장(靑丘示掌)』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육전조례(六典條例)』
「서울육의전(六矣廛) 연구(硏究)-이조(李朝) 도시상업(都市商業)의 일고찰(一考察)-」(유교성, 『역사학보』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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