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공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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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개념
의류 · 방한용 제품 및 특수 용도의 섬유를 생산하는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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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의류 · 방한용 제품 및 특수 용도의 섬유를 생산하는 산업.
내용

원료·중간재 및 최종 상품을 제조, 가공하는 공정까지를 포함한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섬유를 가공하여 생사·섬유사·연사·끈·로프·망 및 기타 끈제품을 생산하는 활동, 각종 섬유사로 직조나 편조물을 생산하는 활동, 각종 섬유사·직물·편조물·직물제품 등을 염색·표백·가공·정리하는 활동, 직물의 도포·삼투·경포·방수 및 기타 처리활동, 각종 의류와 장신품 제조활동, 펠트(felt)·부직포·제면 및 기타 섬유제품의 제조활동 등이 포함된다.

섬유공업은 그 분류에서 크게 소재별 분류와 산업별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소재별 분류란 실 및 직물제조용 소재에 따른 분류로, 천연섬유·인조섬유 부문으로 나뉘며, 천연섬유 부문은 다시 식물성·동물성·광물성 섬유 부문으로, 인조섬유 부문은 무기섬유·유기섬유 부문으로 세분된다.

한편, 산업별 분류는 보다 일반적인 분류로 업종의 성격에 따라 방적, 직조 및 섬유가공업(171), 편조업(173), 의복제조업(181), 화학섬유제조업(243), 기타 섬유제품제조업(172)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섬유공업은 원면, 원모 및 누에고치 등 천연섬유 원료를 생산하는 농목업과 카프로락탐(Caprolactam)·PTA(Purified Terephthalic Acid) 등의 화학섬유 기초 원료를 생산하는 화학공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기술집약도가 다른 섬유생산 부문이 매우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와 같이 섬유공업은 일반적으로 노동집약적이며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의 섬유공업은 풍부한 노동력에 힘입어 꽤 일찍부터 발달하였으며, 비교 우위를 누리는 수출주도산업으로 성장하여 근대적 공업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1) 근대 공업의 도입기(1945년 이전)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물레와 베틀을 이용하여 삼베·모시·비단·무명 등의 전통적 천연섬유를 가공, 생산해 왔는데, 이는 주로 부녀자들에 의한 가내수공업 형태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근대적인 공장제생산은 191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면방직업과 생사 및 견방직업을 중심으로, 일본의 섬유자본과 일부 민족자본에 의해 도입된 근대 공업은 수공업형태의 전통적 섬유생산 기반과 병존 또는 대체되면서 발전하였다.

이 무렵 자본금 10만 원으로 설립된 경성방직주식회사와 자본금 4만 원으로 설립된 김덕창직포공장은 당시 손꼽히던 근대 민족공업으로서 우리나라 섬유공업 발달사의 효시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하는 민족공업은 일본 제국주의에 침식당하여 매우 보잘것없는 것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그 반면 섬유업계에 진출한 일본 자본의 점유율은 매우 커졌다.

특히 면방적공업에 일본 섬유자본의 진출이 현저했는데, 1917년 일본 미츠비시[三菱]에 의해 설립된 조선방직주식회사(면 정방기 1만 5,200추, 직기 610대 규모)를 시작으로 1930년대 일본의 공업정책 및 식민지정책으로 본격화되었다.

그 결과 섬유공업 생산액은 1922년의 3,099만 원에서 1940년에는 2억 3,218만 원으로 약 7.4배 신장되었으며, 총 공산품 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2.4%에 달하였다.

이 기간 중 섬유생산구조를 살펴보면, 직물류의 비중이 총 섬유제품 생산액의 54.9%였으며, 섬유사류의 비중은 39.0%였다. 업종별로는 면방직 및 견방직업이 사류와 직물류 생산의 46.5%, 32.3%를 차지하여 섬유제품 생산의 주류를 이루었다.

(2) 수입대체기(광복 후∼1950년대)

광복 전에 이미 근대 공업으로서의 기반을 다진 섬유공업은 광복 직후 산업의 정비와 확장, 6·25전쟁 동안의 피해와 생산 축소, 전쟁의 피해시설 복구와 시설의 확충, 1950년대 말의 생산 과잉과 정체 등을 경험하면서, 생산과 고용면에서 산업상의 비중이 증대함과 동시에 수입 대체 및 자급 기반을 구축하였다.

당시의 공업 성장은 주로 식품 및 섬유공업 등 소비재공업 부문에 치중되어 추진되었는데, 이는 국민생활과 직결된 생필품의 공급 부족사태가 극심하여 이를 해소하고 민생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당면과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1953년에서 1957년 사이에는 섬유공업의 연평균 성장률이 24.6%에 달하여 같은 기간 동안 제조업의 19.0%를 크게 상회함으로써, 제조업 부가가치 중 섬유공업 비중은 1957년에 18.5%로 증대되었다.

한편, 1950년대 말에는 섬유업계에 대한 방만한 투자로 공급 과잉과 유휴시설의 문제에 직면하여, 일시적인 정체기를 맞이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1950년대에 섬유공업이 신속하게 수입 대체와 아울러 자급태세를 갖출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당시 원조자금에 의한 시설 및 원자재의 원활한 공급,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의 공급, 그리고 적은 자본과 낮은 기술 수준으로도 손쉽게 공업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섬유공업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50년대의 수입대체기에 가장 괄목할 만한 신장세를 보인 부문은 모방직공업 분야였다. 이 시기에 소모방적 부문의 시설 증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모직물공업 확장계획이 수립·실시됨에 따라, 유엔한국부흥위원단(UNKRA)·세계식량기구(FAO) 및 미국 원조기금과 정부의 외화 대부를 통하여 외국의 최신 모방시설을 도입함으로써, 모방직공업의 설비가 대폭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1950년에는 방모 4,909추이고 소모 정방기는 없었으나, 1960년에는 방모 1만 230추, 소모 정방기 4만 8,936추로 확장되었다.

모직물 생산량도 1945년의 266㎞에서 1960년에는 4,356㎞에 달하여 연평균 22.3%의 높은 신장세를 나타냈다. 한편, 모제품의 완전 자급체제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1958년에는 모제품 수입금지조치가 단행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급속한 발전에 따라 모방적공업은 광복 당시 생산시설이 거의 전무한 취약산업에서 1960년에는 전체 제조업 생산액의 4.4%, 섬유공업 생산액의 17.6%를 차지하는 중요한 섬유공업의 한 부분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면방직공업은 6·25전쟁을 전후하여 원조자금에 힘입어‘면방직긴급재건계획(1953∼1957)’이 실시됨으로써, 시설의 재건 및 확장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과, 방적기와 직기가 1953년에는 각각 17만 7,432추와 3,822대였던 것이 1960년에는 47만 4,848추와 1만 54대로 대폭 확장되었으며, 면사 및 면직물 생산량도 각각 1953∼1957년 동안 연평균 32.8%, 23.1%의 높은 신장률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완전 자급체제를 확립함과 동시에 홍콩·미국 등지에 소량이나마 면제품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3) 고도성장기(1960∼1970년대)

1950년대 말에 이미 면방직공업 및 모방직공업에서 완전 자급태세를 갖춘 섬유공업은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추진된 1960년대 이후에는 내수산업에서 수출주도산업으로 전환하여, 생활수준 향상 및 개발재원 조달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이 기간에는 새로이 화학섬유공업이 개발되어 수입 대체와 수출 증대를 동시에 추진하였으며, 의류공업이 수출특화산업으로 육성되면서 높은 성장을 실현하였다.

1·2차 석유 및 자원 파동이 있었던 1974년, 1975년과 1979년, 1980년에는 그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의류 부문의 성장률이 두드러졌다.

1963년에서 1979년 동안 섬유공업 부분의 생산액과 부가가치는 연평균 33.4%, 34.8%의 높은 신장률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전반적인 공업 발전 추세로 인하여 제조업에 대한 비중은 점차 감소하여 1979년에 각각 12.4%, 13.8%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섬유공업의 고도성장은 무엇보다도 수출 수요의 급속한 신장세에 따른 것이었으며, 수출 수요의 신장세는 생산설비의 확장에 반영되었다. 특히, 면방직공업의 정방기 및 직기 등이 크게 확충되어 1979년에 이르러서는 세계 10위권 내의 면방직 생산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1960년 이전에는 초기 발전단계에 머물렀던 화학섬유공업이 이 기간 동안 급성장하여 고도성장의 동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화학섬유공업은 1960년대 섬유 수요의 다양화, 모방업계의 합성섬유 부문으로의 적극 진출로 본격적인 발전의 기틀을 다진 가운데 화학섬유업체의 설립을 통하여 본격화되었다.

그 뒤 생산과 설비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1970년대 중반에는 약 70%의 수입 대체를 다루었다. 이러한 가운데 제품생산도 다양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품생산구조도 변화하고, 1970년대에는 나일론의 비중이 저하되고 폴리에스테르가 새로운 주종 상품으로 대두하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천연섬유에서 인조섬유로 세계 섬유수요양상이 변화함에 따라, 화학섬유공업은 더욱 더 촉진되어 1975년에서 1980년 사이 연평균 12.6%의 생산 신장률을 나타냈다.

이러한 높은 성장률에 힘입어 섬유사 생산 중 화학섬유사의 비중도 1966년 19.0%에서 1979년에는 52.6%로 크게 증대하였으며,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에 22.7%에서 56.1%로 확대되었다.

한편, 의류공업도 1950년대 이전까지는 주로 가내수공업적 또는 중소 공장의 주문 및 소규모생산 단계에 불과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 경제 발전에 따른 내수의 증대와 수출 수요의 증대에 힘입어 보세가공 단계를 거쳐 공장제공업으로 발전하였다.

의류공업은 1960년대 초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원자재를 바탕으로 주로 내수용 의류를 생산하였으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 화학섬유가 국내 생산되고 제품 수준이 향상되면서 본격적인 수출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67년 640달러에 불과하던 의류 수출은 1980년에 27억 달러를 넘어섬으로써 1967년에서 1980년 동안 연평균 30% 이상의 높은 신장률을 보여 세계 굴지의 의류수출국으로 발전하였다.

이 기간 동안 의류 수출이 우리나라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0% 정도에 달하여, 우리 나라 전체 수출품 중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였다. 또한 의류공업은 섬유공업 중 가장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서 공업화 초기 단계부터 생산 및 부가가치, 고용면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해 왔다.

197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루어 1976년 생산액이 제조업 및 섬유공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7.6%, 35.8%에 달했으며 고용에서도 15.8%, 47.8%에 달함으로써, 최대 고용유발공업임을 나타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그 지위가 저하되어, 1979년 섬유공업에서 차지하는 생산액·부가가치 및 고용 효과의 비중은 각기 33.0%, 32.1%, 40.4%를 기록하였다.

(4) 안정성장기(1980년대)

1970년대 중반까지 높은 성장세를 유지해 온 섬유공업은 1980년대 들어와 대외적으로는 선진 여러 나라에 의한 섬유류 수입규제 강화 및 개발도상국에 의한 추격 등으로, 대내적으로는 정부의 중화학공업에 대한 우선 육성정책과 숙련 기능인력 확보의 어려움 및 안건비 상승 등으로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1982년과 1985년에는 섬유 수출이 감소되는 등 그 동안 주로 가격경쟁력에 의존해 온 섬유 수출에 품질 고급화 및 기술개발 등 비가격 경쟁력 제고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섬유제품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1986년에는 개별산업의 지원정책을 하나로 통합시킨 공업발전법에 따라 직물 및 염색·가공업을 합리화 업종으로 지정해 신규업체의 진입 금지 및 노후시설 개체자금 등을 지원하였다.

또한 편직·봉제·염색가공시설 개체 등에 대해서도 합리화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신기술 및 신소재 개발, 염색공단 폐수처리시설 확충, 패션·디자인 교육기자재 구입 등에 대해서도 자금을 지원하였다.

이와 같은 정부의 자금 지원과 더불어 때마침 도래한 3저 현상으로 1987년에는 단일품목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100억 달러 수출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급속한 임금 상승과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의류 등 봉제업종을 중심으로 와이셔츠 등 저가 대량생산 품목은 인건비가 싼 지역에서 생산하고, 국내에서는 중·고가품만을 생산하는 등 업종별·품목별 생산구조의 고도화가 촉진되었다.

섬유 수출도 의류 등 봉제품 수출 비중은 낮아진 반면 사 및 직물류 수출 비중이 높아지는 등 선진국형 수출구조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은 1970년 총 수출의 41%를 차지하는 등 한국 경제의 수출 주도 개발전략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 후 우리 경제가 성장·확대되어 감에 따라 그 상대적 중요성이 많이 감소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제조업 생산의 9%를, 총 수출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60년 생산 규모는 177억 원으로 전체 제조업의 약 30%를 차지하였다. 1970년에는 이의 약 14배에 해당하는 2,438억 원을 생산하였으나,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3%로 낮아졌다. 이처럼 섬유산업의 비중이 낮아진 것은 절대 규모는 증대되고 있으나, 증가율이 제조업에 비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980년 이후 전체 제조업의 생산증가율은 연평균 16.6%인 반면 섬유산업의 생산증가율은 연평균 11.5%에 머물고 있다. 또한 수출 역시 규모면에서는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으나,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시기별 수출 규모를 보면, 1960년 400만 달러 수출을 시작으로 1970년에는 3억 4,100만 달러를 수출하여 총 수출에서의 비중도 41%로 높아졌다.

그러나 1980년에는 50억 달러 수출로 규모면에서는 1970년에 비해 약 15배가 늘어났으나, 총 수출에서의 비중은 28.6%로 낮아졌다. 특히 1987년에는 118억 달러를 수출함으로써 100억 달러 수출시대를 열었다.

이후 지속적인 수출 증가세로 1997년에는 183억 달러를 수출했으며, 중국·이태리·독일에 이어 세계 4위의 섬유수출 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4차에 걸친 경제개발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섬유공업은 전통산업으로서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여 경공업 성장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중점 육성전략에 따라 생산·고용 및 수출에서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저하되어 왔다.

특히 최근 섬유제품의 수출입 추이를 살펴보면, 사·직물류의 수출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의류제품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 처럼 의류제품의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고임금화로 세계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보다 노동력이 풍부하고 임금이 싼 후발개도국들의 제품이 우리의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유럽연합(EU) 등 지역 경제를 블록화함으로써 우리의 섬유수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섬유시장에서 멕시코의 점유율은 1990년 2.7%에서 1996년에는 9.6%로, 6년 동안에 무려 6.9%가 늘어났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3.8%로, 같은 기간에 5.9%가 감소하였다. 한편, 사·직물류의 수출은 중국 등 동남아 국가들의 의류산업 활황으로 인해 이들 지역에 대한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수입의 경우에는 국내 의류산업의 해외 투자 확대 등에 따른 공동화로 외국산 의류 완제품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중·저가품은 중국으로부터, 고급 유명브랜드 제품은 이태리 등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섬유산업의 무역특화지수(수출-수입/수출+수입)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1988년 0.65에서 1996년에는 0.46으로, 같은 기간에 0.19%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나, 섬유산업의 수출경쟁력이 상당히 약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은 면방, 화학섬유 등의 섬유소재 단계에서부터 중간 단계인 직물 및 염색·가공업과 최종 단계인 의류 등 봉제업까지 균형적인 생산구조를 갖추고 있어 국내의 여건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강하다.

또한 섬유산업의 생산설비 규모면에서 세계 8위 수준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화학섬유생산은 세계 4위, 면방시설은 세계 14위, 제직시설(면직기 기준)은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직물 분야의 경우에는 세계 1위의 혁신 직기(제트직기) 보유국이다. 또 섬유 수출은 1994년 당시 세계 섬유 수출의 6.1%를 차지하여 중국, 이태리,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섬유산업은 사용 연한이 지난 노후설비를 많이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메커트로닉스 기술 등이 복합된 첨단설비의 낮은 보유율 등은 약점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사용 연한이 지난 노후설비 보유율(1995년 말 기준)은 25∼57% 수준으로 업종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방적설비의 경우에는 57%에 달하고 있다. 또한 컴퓨터 횡편기 보유율은 약 30% 정도에 불과하는 등 전체 생산설비의 자동화율은 약 50% 수준으로 선진국(70∼80%)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생산설비의 낙후와 낮은 자동화율은 섬유산업의 생산성 제고 및 품질 고급화의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 실례로 섬유산업의 생산성은 일본의 50∼80%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과거 해외시장에서 가격경쟁 우위에 의한 대량생산, 수출방식으로 성장해 옴으로써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에 익숙해 있다.

따라서 사 및 직물류 등의 섬유 소재 업종을 비롯하여 의류 봉제업체 등은 선진국에 비해 단위업체당 설비 규모가 크고, 전문화·특화되어 있지 않아 다품종 소량 고가품 생산체제가 미비되어 있는 점 등은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발전을 저해시켜 온 요인이 되었다.

최근에는 인건비 상승, 인력난 등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첨단 자동화설비의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수출 오더의 단기간 납기, 소량화에 대응하여 QR(Quick Response)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생산구조가 다품종 소량 생산방식으로 점차 전환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쟁력 약화 품목의 해외 이전 등 생산품목의 전문화·특화를 통한 고급·고부가가치 제품 위주의 생산은 향후 섬유산업의 생산구조 고도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최근 우리나라 섬유산업은 기존의 중소 영세기업 중심의 피라미드형 구조에서 중견기업 중심의 자본집약적 다이아몬드형 구조로 전환되는 등 산업조직이 견실해지고 있어 섬유산업의 성장·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기업 위주로 구성된 섬유 소재 분야의 경우에는 품질(CHOP)제도를 통해 중소업체에 기술지도 및 자금 지원 등은 물론 자사 유통망을 통해 중소업체의 제품판매 등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가 구축되고 있다.

또한 소비자 수요의 다양화, 고급화, 단사이클화에 대응한 정보 네트워크화의 구축 등 산업의 정보화 진전에 따라 상류 부문인 섬유소재 분야와 하류 부문인 제품 분야와의 상호 협력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염색·가공 등의 중간 가공 및 의류 등 제품 부문에서도 상당 수준의 규모를 갖춘 전문 중견업체들이 출연하여 같은 분야의 기술 및 품질 수준 향상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업종간 협력 강화 등 산업조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섬유산업은 선진국에 비해 업종간 수직·수평적인 협력관계가 미흡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섬유소재 분야는 생산 규모 및 기술 수준면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육박하고 있는 반면, 중간 가공 및 의류 등 최종제품 부문은 90% 이상이 중소업체들로 구성되어 있어 생산시설이나 기술 수준 등이 열세에 있다.

이들 중소업체들은 대부분이 임가공에 의한 하청생산방식에 의존함으로써 독자적인 상품기획이나 판매 등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 이와 같은 부문간 불균형의 심화는 산업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섬유소재 분야의 경우는 생산 규모의 대형화로 인해 제품의 전문화·특화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품의 대량생산과 과잉 경쟁에 따른 덤핑수출 등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더욱이 일부 대기업들에게 편중된 쿼터 배분은 중소 전문생산, 수출업체의 육성을 저해하는 등 우리 나라 섬유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셋째,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기술 수준을 보면 전체적으로 선진국의 75% 정도이며, 화학섬유의 경우는 선진국의 85%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수준의 낙후는 제품의 품질 등 비가격 경쟁력 약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섬유산업의 약점이 되고 있다.

특히 염색·가공은 의류제품 생산 단계상 중간 과정에 속하며 제품의 고급화, 고부가가치화에 중요한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술 수준은 선진국의 70∼75%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패션·디자인 수준은 아직 미성숙 단계에 있어 의류 등 섬유제품의 고급화에 대한 기여도가 낮고, 주로 바이어가 지정한 패션·디자인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패션·디자인 수준은 외국제품 모방 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디자이너나 머천다이저 등 전문인력 보유 수도 이태리, 미국 등 선진국의 약 30%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기술개발 기반면에서 보면 우리 기업의 재투자와 개발(R&D)투자 및 연구능력은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섬유 수요의 다양화, 고급화에 따라 기업들은 의류용 및 산업용 신섬유소재, 패션·디자인 개발, 신제품개발 등에 대한 R&D 투자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또 정부와 업계에서는 타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염색가공기술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구염색공단 내에 염색기술연구소 설립과 첨단 염색가공기술개발사업인 Dyetech21프로젝트(1994∼2000)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하류 부문인 의류제품의 고급·고부가가치화를 위해 디자인 라이브러리, 전시실, 교육기능 등을 갖춘 패션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기업 차원에서는 자체 디자인연구소 설립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해외 연수 등이 확대되고 있어 향후 섬유산업의 기술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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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산업련관표 Ⅰ·Ⅱ』(한국은행, 1983)
『광공업통계조사보고서』(경제기획원)
『수출통계연감』(한국무역협회)
『한국섬유산업의 물동분석』(한국섬유산업연합회)
『화섬편람』(한국화섬협회)
『방적』(대한방적협회)
『소모방』(한국소모방협회)
「한국의 산업 발전역사와 미래비젼」(산업연구원, 1997)
「한국의 산업」(한국산업은행, 1984·1987·1996)
「섬유공업의 성장과정과 생산구조」(김영봉, 『연구조사보고』 75-21, 한국개발연구원,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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