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석인본. 1979년 후손 용균(容均)·도식(燾植)·종완(鍾完)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민수(李玟秀)의 서문과 권말에 10대손 평균(枰均)의 발문이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과 전남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57수, 부(賦) 3편, 책(策) 1편, 서(書) 16편, 권2는 부록으로 수운정운(峀雲亭韻) 36수, 만장 28수, 서(書) 68편, 김만영(金萬英)의 수운정서, 정중원(鄭重元)의 수운정 중수기 및 사실기(事實記), 수운정 상량문, 가장, 묘지, 허목(許穆)의 신도비명, 박준규(朴焌圭)의 「강호구가(江湖九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주손(胄孫)이 보전해오던 초고가 분실되어 종후손(從後孫) 용균이 소장한 것을 다시 모은 것으로, 그 내용이 다양하고 문체가 아름다워 그 가치가 높다. 시는 만사 21수를 제외하면 몇 수 되지 않으나, 주로 만년에 자연과 벗하면서 지은 것들로 섬세하면서 흥취가 자못 높다.
부는 주로 후손에게 경계할만한 내용을 지은 것이다. 책은 왕의 성책(聖策)에 대해 왕도와 패도를 논한 것인데, 문체가 사뭇 격앙하여 저자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시의 「강호구가」는 70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1651년(효종 2) 영산강 위에 수운정을 짓고 여생을 보내며 지은 한글체 가사인데, 부모와 임금의 은혜와 유유자적한 전원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한시에도 「수운정즉사(峀雲亭卽事)」 3수가 보인다.
저자는 윤선도(尹善道)와 교분이 깊어 그와 내왕한 글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이 가사도 윤선도의 「어부사(漁父詞)」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서는 대부분 당대 명문대가들의 것으로, 저자의 정치적·학문적 위치를 잘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