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2책. 활자본. 1800년(정조 24) 5대손 구상(龜相)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익(金熤)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구상·환기(煥箕) 등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있다.
권1에 일기와 시 1수, 서(書) 6편, 권2는 부록으로 만사 9수, 제문 4편, 고문(告文)·상량문·축문·유사·행장·묘갈명·비음기(碑陰記)·묘지명·신도비명·시장(諡狀)·소(疏)·계(啓)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기는 1624년(인조 2)부터 1628년까지 약 5년간에 쓴 것이다. 저자가 이괄(李适)의 난 때 공주로 왕을 호종하고, 그 뒤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거쳐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로 승진, 상경하던 도중 정묘호란이 일어나 남하하는 세자를 만나 완산으로 따라간 일 등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김상헌(金尙憲)·홍익한(洪翼漢) 등 척화파, 최명길(崔鳴吉) 등 강화파, 권진(權縉) 등 무장, 김장생(金長生)·장현광(張顯光) 등 학자에 대한 세평(世評)이나 인물됨을 기록한 내용이 있어 관심을 끈다. 시 「화이자수(和李子修)」는 친구간의 깊은 우정을 표현한 것이다.
서(書)의 「기묵렬등서(寄默烈等書)」는 정묘호란 때 아들 시묵(時默)과 시열(時烈)에게 보낸 것으로, 국사(國事)를 위해 바치는 몸이므로 사사로이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입장을 말하고, 가족 모두 속리산으로 피신하여 노모를 잘 봉양할 것을 당부하였다. 「여이사로서(與李師魯書)」 역시 정묘호란중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친지에게 보낸 서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