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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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락
개념
두레조직에서 공동작업의 진행을 책임지는 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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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두레조직에서 공동작업의 진행을 책임지는 역원.
내용

지방에 따라서 총각대방(總角大方)이라고도 한다. 두레조직에 있어서 수총각이라는 역원을 두는 관습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레라는 작업공동체는 고대국가 형성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레는 조선시대에 벼농사를 짓는 농촌에 널리 시행되었으며, 일제 말기에는 많은 변질이 있었지만 그래도 남부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8·15광복 후 화폐경제의 영향으로 두레는 점차 그 모습이 사라져간 노동관행이 되었다.

두레조직은 반드시 자연촌락 단위로 형성되었으며, 촌락성원 중에서 성인남자가 없는 가족은 두레에 참가할 의무에서 무상으로 면제되었다.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어 두레에 참여할 때에는 ‘주먹다듬이’라는 의식을 행하였다.

이렇듯이 두레조직은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띠면서 강한 통제력을 갖는 촌락단위의 노동공동체였다. 그러므로 두레조직 내에는 특정한 역할을 분담하는 역원이 있었고, 역원들은 주어진 역할에 따라서 강한 통제력을 가졌던 것이다.

두레조직의 역원에는 두레의 대표자며 총책임자인 영좌(領座:지방에 따라서는 좌상·행수·영수·반수·좌장이라고도 함), 대표를 보좌하는 도감(都監:지방에 따라서는 공원·집사·소임이라고도 부름), 수총각, 그리고 수총각을 보좌하는 조사총각(調査總角:청수·진수군이라고도 부름), 회계와 서기일을 맡아보는 유사(有司), 방목된 소를 감시하는 방목감(放牧監)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두레조직 속에서 수총각은 작업장에서 작업진행을 책임맡아 작업을 총지휘하며, 작업장을 향하거나 두레농악을 행할 때에는 농기(農旗)의 기수를 맡는다. 두레의 작업은 수총각의 지휘 아래 매우 규율 있고 능률적으로 전개되었다.

수총각이 드는 농기는 ‘두레기’라고도 하는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쓴 깃발이다. 농기는 농민의 자부심과 단결을 나타내는 두레의 상징으로, 매우 신성시되었다.

수총각은 공동작업이나 두레농악을 할 때면 이 농기를 들고 앞장서서 인도한다. 그러므로 영좌나 도감이 두레조직을 상징하는 대표자라면 수총각은 실제의 공동작업을 총괄하는 역원인 셈이다.

다른 임원과 마찬가지로 수총각은 매년 모내기철에 개최되는 두레성원의 전체회의에서 구두의결에 의하여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수총각의 자격은 일 잘하고 똑똑한 소작농이나 머슴 중에서 뽑는 것이 보편적이다.

수총각이 비록 소작농이나 머슴 중에서 선출되지만, 그 책무가 막중하여 촌락주민이나 두레원들 사이에서 상당한 위신을 가지고 있었다. 수총각의 임기는 1년이지만 연임이 가능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농촌사회연구』(최재석, 일지사, 1975)
『한국농경세시(韓國農耕歲時)의 연구』(김택규,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5)
「두레공동체와 농악(農樂)의 사회사」(신용하, 『한국사회사연구』 2, 1984)
집필자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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