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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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불교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혜목산 현욱의 제자가 되어 법맥을 계승한 승려. 선승(禪僧).
이칭
시호
진경대사(眞鏡大師)
이칭
법응대사(法膺大師), 보월능공(寶月凌空)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855년(문성왕 17)
사망 연도
923년
출생지
미상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혜목산 현욱의 제자가 되어 법맥을 계승한 승려. 선승(禪僧).
내용

성은 김씨(金氏). 어려서부터 불사(佛事)를 좋아하였으며 9세에 출가하여 혜목산(惠目山)현욱(玄昱)의 제자가 되었다.

868년(경문왕 8)에 현욱은 간략히 그에게까지 이어진 선법(禪法)의 맥을 설명하고 심희에게 심등(心燈:부처와 조사로부터 이어진 깨달음의 맥)을 전하였으며, 이 법을 믿고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당부한 뒤 입적하였다.

873년에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명산을 순방하다가 888년(진성여왕 2)부터 송계산(松溪山)에 머물면서 좌선에 몰두하였는데, 도를 구하고자 하는 학인(學人)들이 모여들었다.

그 뒤 설악산으로 옮겨 선객(禪客)을 접하였고, 진성여왕이 궁궐로 청하자 강원도 강릉에 있는 탁산사(託山寺)로 은거하였다.

얼마 뒤 김해의 서쪽에 선림(禪林)이 있음을 듣고 경상남도 창원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진례성제군사(進禮城諸軍事) 김율희(金律熙)가 성안에 정진할 수 있는 처소를 지어 머물러 있게 하였다.

이 때 효공왕은 특사를 파견하여 경배의 뜻을 표하였다. 그곳은 수선(修禪)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으므로 선우(禪宇)를 창건하고 봉림사(鳳林寺)라 하였다.

지김해부진례성제군사명의장군(知金海府進禮城諸軍事明義將軍) 김인광(金仁匡)은 이때 귀의하여 보방(寶坊:사찰의 당우)을 건립하였다.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하나인 봉림산문은 이 때부터 그 선풍이 크게 선양되었다. 경명왕은 그의 덕을 사모하여 청하고자 하였으나 쉽게 움직이지 않자 흥륜사(興輪寺) 승려 언림(彦琳)으로 하여금 후한 예로써 그를 모셔 올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응하여 918년(경명왕 2)에 경주로 가자 경명왕은 왕궁으로 맞아들여서 사자(師資:스승의 덕)의 예를 표하고 설법을 청하였다. 설법이 끝난 뒤 왕은 법응대사(法膺大師)라는 존호를 주었다.

그 뒤 봉림사로 다시 돌아와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나이 68세, 법랍 50세로 입적하였다. 시호는 진경대사(眞鏡大師), 탑호(塔號)는 보월능공(寶月凌空)이다.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가 1963년 보물로 지정되어 경복궁에 있다.

참고문헌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허흥식 편저, 아세아문화사, 1984)
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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