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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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어린이를 주요 대상으로 공연하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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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어린이를 주요 대상으로 공연하는 연극.
내용

어린이의 지능·예능·교양을 계발하기 위한 연극으로서, 어린이를 선도하는 종합적인 교육수단으로서 활용된다. 일반적으로 아동이라는 범주의 연령은 보통 6세부터 12세까지의 초등학교 학령을 말하는데, 노동기준법에는 15세 미만으로 정해져 있고, 사회복지법에서는 아동을 18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라는 말의 어감에는 유아의 개념과 아동의 개념이 모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동극은 좀더 넓게 보아서 그 대상을 초·중·고등학교 학생까지 포함시키고 광범위하게 학생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생극은 대학생이 하는 연극까지 포함하지만 그 내용이 성인극이므로 아동극의 범주에 넣지 않으며, 다만 내용이 아동을 중심으로 할 때만 아동극에 포함시킨다.

아동극은 아동문학을 그 내용으로 삼고 있으므로 동요·동화·각본을 종합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무대 위에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음악·동작·무용·무대장치(미술)·극장(건축)·배우의 분장(미용술)·의상·조명의 조화를 필요로 하며, 여기에 관객(심리학)이 참여하기 때문에 어린이의 교육에 가장 효과 있는 실천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아동극을 공연하는 방법은, 첫째 어른들로 구성된 배우가 공연하여 어린이들에게 관람시키는 방법, 둘째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공연하는 연극, 셋째 어린이들만이 등장하여 어린이들에게 관람시키는 공연방식의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 공연방식 어느 것에나 어른들의 지도와 협조가 필요하다.

아동극의 근본 목적은 학부형이나 어른들의 관객도 포함할 수 있지만, 특히 어린이들에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어른들로 구성된 극단, 또는 어른과 어린이 배우가 함께 공연하는 기성극단의 아동극의 경우에 주의할 점은 그 내용이 어린이들의 생리에 맞도록 꾸며져야 한다는 점이다.

어린이들만이 출연하는 아동극은 주로 학예회의 일부로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도 어린이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며, 어른들은 그 배후에서 선도하는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 특히, 출연하는 어린이들의 분장·의상·무대장치 등은 단순하게 상징적으로 처리하며, 모든 것을 어린이 자신들이 직접 작업하도록 하여야 한다.

대화와 행동의 연습에 있어서도 교사나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말고 어린이들의 말과 몸짓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고, 또 그들끼리 의견을 교환시켜보는 것이 아동극을 교육적으로 효과 있게 다루는 방법이다.

아동극을 내용에 따라 분류해보면, 첫째 요정이야기, 둘째 영웅이야기, 셋째 우화, 넷째 신화 등이 있다. 요정이야기는 꽃·나비·새 등의 요정, 초자연적인 존재인 귀신·도깨비·천사·신선 등이 등장하며, 자연물인 돌·나무·바람·해·달 등이 어린이들과 대화를 함으로써 꿈과 상상력을 키워준다. 영웅이야기는 영웅과 위인들의 생애나 씩씩한 행위를 극화해서 보여줌으로써 어린이들의 용기와 선행을 북돋운다.

우화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교훈을 들려주며, 특히 멋과 해학을 전달한다. 신화는 우주나 만물의 창조에 관련된 이야기로서, 어린이들이 현실에만 만족하지 않고 세상의 신비에 눈뜨며 이상을 키우도록 한다.

아동극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동극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요나 동화보다 훨씬 늦게 등장하였다. 유럽에는 14세기경부터 소년극단이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18세기경에 아동극이 시작되었다. 루소(Rousseau, J. J.)는 어린이의 천진성을 강조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부르짖고, 또 구속 없는 아동교육의 모델로서 소설 ≪에밀≫을 발간함으로써 아동문학이나 아동극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에 영국의 자연시인 워즈워드(Wordsworth, W.)가 동심을 예찬하는 등의 영향으로, 본격적인 아동극은 20세기에 이르러 영국과 미국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과과정에 아동극을 채택한 이후부터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아동극은 1923년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연구단체인 색동회가 창립된 이후부터 출발하였다. 그 주동 구실을 한 방정환(方定煥)은 아동을 민족갱생의 뿌리로 보고, 처음으로 아동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존댓말을 쓰기 시작하였고, ≪어린이≫라는 아동잡지를 창간하였으며,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어린이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21년에 천도교소년회(天道敎少年會)를 조직하였는데, 1923년 1월 14일에 그 회의 주최로 독일의 동화극 <한네제의 죽음>(2막)과 우리 나라의 <별주부전>(2막)을 동화대회 때 공연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아동극의 효시이다.

1923년 7월 23일에는 서울 천도교강당에서 색동회와 어린이사 공동주최로 1주일 동안 제1회 아동문제강연회 겸 아동예술강습회를 개최하였는데, 지방 아동단체 16개 및 유치원·국민학교 교사들이 다수 참가하였다. 초창기 아동예술에서는 동화가 가장 우세하고, 그 다음이 동요이고, 아동극이 가장 부진하였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 성극(聖劇)으로 아동극을 공연하기도 하였지만, 본격적인 아동극은 잡지 ≪어린이≫를 통해서 개척되었다. ≪어린이≫의 창간호와 제2호에 혹부리영감 이야기를 소재로 한 <노래주머니>(1막 3장)가 실렸는데, 방정환은 이를 ’학교·소년회 아무나 하기 쉬운 동화극‘이라고 설명하였다.

방정환은 또 ≪어린이≫ 10호에 동극 <토끼의 재판>을 발표하였다. 색동회 동인 윤극영(尹克榮)은 1924년 봄에 어린이예술단체 ’다리아회‘를 조직하고 아동극을 가극(歌劇)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하였다. 그때의 각본은 방정환이 지은 <까막잡기>와 메테르링크의 <파랑새>를 박팔양(朴八陽)의 번역으로 내청각(來靑閣:지금의 서울신문사 자리)에서 공연하였다.

1924년 ≪어린이≫ 3월호에는 김운정(金雲汀)이 <메아리>(1막)라는 동화극을 발표하였고, 1925년 ≪어린이≫ 4월호에는 하기 쉬운 동화극이라고 하여 <시골쥐·서울쥐>(1막)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어린이≫ 5월호에는 색동회 동인 마해송(馬海松)이 동화극 <장님과 코끼리>(1막)를, 같은 해 8월호에는 소년극 <두꺼비의 배>(1막)를 발표하였다. 같은 해 9월호에는 김일석(金一石)이 <끝 없는 옛말>이라는 동화극을 발표하였다. 색동회 동인 정인섭(鄭寅燮)은 1926년부터 아동극을 전문적으로 ≪어린이≫에 발표하였다.

그 해 1월호와 2월호에 독일 그림동화집에 있는 <백설공주>(7장)를 동화극으로 발표하였다. 그 뒤 그는 계속해서 <소나무>·<잠자는 미인> 등을 발표하였다. 이 밖에도 ≪어린이≫지에 신고송(申孤松)·연성흠(延星欽)·최경화(崔京化) 등이 동화극을 발표하는 등, 1920년대는 비교적 아동극이 ≪어린이≫의 지면을 통하여 활발하게 발표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가 1927년에 어린이날을 금지시키는 등 어린이운동에 탄압을 가하자, 일부 아동운동가들이 방향전환을 하기도 해서 일반 아동극은 빈사상태에 빠졌다. 그러자 당시 보모를 양성하는 보육학교에서 어린이문제를 취급하는 학생 아동극을 시도하였다.

1931년 11월에는 경성보육학교가 공회당(公會堂:지금의 조선호텔 건너편 상공회의소 2층 강당)에서 녹양회(綠羊會) 주최로 동요회(童謠會)를 개최하고 정인섭 작 동요극 <허수아비>(1막)와 <파종 破鐘>(4막)을 상연하였고, 다음해에는 동극 <쳉기통>과 동화극 <사람늑대>(5막)를 상연하였고, 유치원의 아동극으로 정인섭의 <오뚝이>·<맹꽁이> 등이 발표되었다.

광복 후에는 어린이신문들이 나와서 그 지면을 통하여 많이 발표되었다. 또한 아동극단으로 광복 직후 김영일(金英一)·연성흠이 창설한 ’호동‘이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방송극 <똘똘이의 모험>이 등장하여 아동극의 영역이 방송극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1946년에는 방기환(方基煥)의 <손목잡고>, 강소천(姜小泉)의 <꽃나비>, 주평(朱萍)의 <낮과 밤> 등이 국민학교(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됨으로써, 아동극이 교과과정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6·25전쟁 후에는 어린이잡지를 통한 아동극 발표 외에도 아동극집의 발간 및 상연이 약간씩 이루어졌고, 한국아동극연구회·한국아동극협회 등의 주관으로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전국아동극경연대회’가 12회 개최되었고, 아동극단 ‘새들’이 큰 활약을 하였다. 1979년에는‘세계아동의 해’ 기념으로 제19회 전국아동극경연대회가 열려 14개 국민학교가 참가하였으며, 주최는 문예진흥원, 주관은 한국청소년연극교육협회였다.

근래에 와서 아동문학단체로서 한국문학가협회·한국아동문학회·새싹회·현대아동문학회 등이 조직되었으며, 박병두·박홍근·이석현·이원수·장수철·윤석중·박홍민·주태익·한낙원 등 많은 아동문학가들이 아동극집을 펴냈다. 오늘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매일 아동극이 방송되고 있으며, 또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도 상연되고 있고,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

또한 기성극단의 아동극 공연은 1980년대에 들어 성황을 이루면서 어린이와 학부모의 커다란 호응을 받고 있으며, 아동극이나 어린이 인형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민간이나 학교에서 어린이들 자신에 의한 아마추어적인 아동극의 상연은 오히려 저조하다.

경제적·문화적 수준의 향상으로 아동극 상연이 호화롭게 꾸며지는 것을 선호하고, 따라서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주춤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동극의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어린이들 자신에 의한 소규모의 소박한 상연과 감상에 있다고 볼 때, 화려한 대형무대 위주의 기성극단 공연 편중의 오늘날의 아동극은 재고되어야만 한다.

참고문헌

『한국아동문학연구』(이재철, 개문사, 1983)
『교사를 위한 아동극입문』(주평, 백록출판사, 1975)
『어린이』(색동회, 1923.3.∼19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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