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찰의 극락전(極樂殿)에 봉안된다. 이 탱화는 보통 다섯 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① 아미타불 단독으로 그리는 독존도(獨尊圖), ② 좌우 협시보살을 그린 아미타 삼존도(三尊圖), ③ 4대보살·6대보살·8대보살과 함께 그린 5존도·7존도·9존도, ④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 아라한(阿羅漢)·외호중(外護衆)을 함께 묘사하는 군도(群圖), ⑤ 서방 극락 세계를 묘사한 그림 등이 있다.
이 아미타관계 탱화는 신라 때부터 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고려시대의 탱화 15점이 일본에 남아 있다. 대체로 그 구도는 삼존도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의 좌우보처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배치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좌우보처로 삼고 있는 것도 있다.
고려시대의 작품은 크게 아미타불의 입상도와 좌상도로 구분된다. 입상도는 극락내영도(極樂來迎圖)의 성격을 지니며, 좌상도는 조선시대의 아미타탱화와 성격이 비슷하다. 고려시대의 탱화 중에는 좌상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과 대세지의 좌우보처와 함께 6대보살이 함께 그려지는 9존도를 볼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아미타탱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살상의 위치만은 서로 다르다. 즉 고려시대에는 6대보살을 불대좌(佛臺座) 아래쪽에 묘사한 데 반해, 조선시대에는 8대보살을 불신(佛身) 부분까지 올려놓은 점이 다르다. 또 조선시대의 아미타탱화는 고려시대의 아미타좌상과 8대보살상을 기본 구도로 하고, 그 위에 사천왕상과 십대제자상, 제석천(帝釋天)과 대범천상(大梵天像)을 첨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도는 석가설법도(釋迦說法圖)와 그 내용이 같은 것이다. 아미타불의 극락회상설법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아미타탱화가 군상도로 바뀌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독립된 정토 신앙의 기능이 강화되고 아미타불의 신앙적 기능이 진리를 설하는 면으로까지 강조되어 석가설법탱화와 거의 같은 구도를 지니게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아미타탱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1306년(충렬왕 32년)에 제작한 아미타불도, 1309년(충선왕 1년) 작의 아미타삼존도, 1320년(충숙왕 7년) 작의 아미타구존도(이상 일본), 1330년 작의 아미타삼존도와 1476년(성종 7)년에 제작한 무위사(無爲寺) 아미타삼존도, 1703년(숙종 29년)에 제작한 동화사 아미타극락회상도, 1776년(영조 52년)에 제작한 천은사 극락회상도, 1840년(헌종 6년)에 제작한 선운사 극락회상도, 1841년에 제작한 동화사 염불암 극락회상도, 1897년에 제작한 은해사 아미타삼존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