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근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훈련부장, 임시정부 경호부장, 광복군 사령부 훈련국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오순근(吳淳根)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6년(고종 13)
사망 연도
1946년
출생지
평안남도 중화
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훈련부장, 임시정부 경호부장, 광복군 사령부 훈련국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오순근(吳淳根). 평안남도 중화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899년 한국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참위에 임관되어 1902년 부위(副尉)로 승진하였다. 1907년 한국군대가 해산되자 일본군과 싸웠으며, 강원도로 가서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유성삼(劉成三)·이수영(李秀英)·주석환(朱錫煥)·표영준(表永準)·명덕상(明德相) 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훈련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그해 11월에는 안동현 임시의사회에 참여하였다. 또 대한청년단연합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하여 경호부장을 역임하였다.

1920년 2월에는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구(金九) 밑에서 경호부장을 지냈고, 4월에는 안병찬(安秉瓚)·김찬성(金贊聖)·김승만(金承萬) 등과 함께 안동현(安東縣)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 제2회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해 9월에는 임시정부 평안북도연통제의 경무사(警務司)로 임명되었다.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단·한족회(韓族會)·대한청년단연합회 등이 통합을 추진해 1920년 2월 통합군대로 인준을 신청하여 승인을 받았다. 7월 임시정부에서 군법 및 법령이 제정(8월 1일 시행)됨으로써 상해임시정부의 군무부(軍務部) 직할 광복군으로 정식 창군하였다. 광복군 사령부의 부관과 훈련국장을 겸임하면서 국내외를 통하여 일제기관의 파괴와 군자금모금, 그리고 일제와의 무력전을 전개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22년 환인현(桓仁縣)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였으나, 대한통의부의 내분으로 탈퇴, 대한군민부(大韓軍民府)를 조직하는 등 만주에서 계속 활동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집필자
강영철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