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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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발해시대 5개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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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발해시대 5개의 수도.
개설

발해의 오경(五京)은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 ·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 등 총 5개의 수도를 말한다.

내용

발해 5경의 위치와 그것을 설치하게 된 사상적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엇갈리고 있으나, 이 5경이 결코 일시에 건설된 것은 아닌 듯하다.

대조영(大祚榮)의 건국에서 제2대 무왕(武王) 대무예(大武藝)의 재위 시에는 『신당서(新唐書)』에 ‘구국(舊國)’으로 적혀 있는 지금의 돈화분지(敦化盆地)의 비좁은 오동산성(敖東山城)을 수도로 하여 새 나라의 기반을 굳혔다. 그 후, 제3대 문왕(文王) 대흠무(大欽茂)에 이르러 중경현덕부를 축조하여 천도하였다.

755년 무렵에는 상경용천부로, 785년 무렵에는 동경용원부로 천도하였다. 이러한 것은 문헌과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거의 확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경압록부와 남경남해부는 비록 5경에 들어 있기는 하나 발해의 멸망 때까지 실질적으로 한 번도 수도가 된 일이 없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발해는 처음에 그 국토 전역으로 보아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3지역에 성을 쌓고 ‘경(京: 중경 · 상경 · 동경)’으로 칭하다가, 이후 2지역에 추가적으로 성을 더 쌓고 ‘경(서경 · 남경)’을 칭하여 도합 5경을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발해의 5경은 당나라가 현종(玄宗) 때부터 수도 장안(長安)을 비롯해 서경 · 동경 · 북경(北京) 등 4경을 설치한데에 자극을 받고 당나라에 대한 대항정신도 작용하여 당나라의 4경에 다시 1경을 더해 5경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또한 오행사상(五行思想)이 작용하였을 것이라고도 본다.

서경압록부와 남경남해부를 5경에 넣게 된 시기에 대해서는 이를 밝힐 만한 뚜렷한 문헌이 없다. 상황으로 판단해보면, 제3대 문왕 이후 약간 위축된 국세를 다시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제10대 선왕(宣王)대인수(大人秀)의 시대로 보는 것이 가장 온당한 견해인 것 같다. 이러한 5경을 중심으로 15부(府) 62주(州)를 관할하는 지방 지배체제가 완성된 것은 11대 왕인 대이진(大彛震) 시기로 보기도 한다.

현황

근래 활발히 진행된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의해 각 도성(都城)의 위치를 정리해볼 수 있다. 상경은 현재의 흑룡강성(黑龍江省)영안시(寧安市)동경성(東京城: 현재의 渤海鎭), 중경은 길림성(吉林省)화룡시(和龍市)서고성(西古城), 동경은 길림성(吉林省)혼춘시(琿春市)팔련성(八連城: 半拉城 · 古土城 · 八磊城 · 八壘城 · 半拉城子土城 등으로도 불림)으로 비정하고 있다. 동경을 혼춘으로 비정하는 견해는 일본도(日本道)와 관련해 의견이 일치되지는 않고 있다. 서경의 경우 역시 임강(臨江)과 집안(集安)으로 각각 의견이 나뉘고 있다. 서경은 압록조공도(鴨綠朝貢道)라고도 불렸는데 당과의 해상교통로였다. 남경 역시 신라도(新羅道)가 있던 지역으로 함흥(咸興) 혹은 그 서쪽 60여리 지점에 있는 백운산성(白雲山城)에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북한의 경우 북청(北靑)으로 비정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발해의 5경은 교통로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러 가지 특징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상경은 정치 · 외교 · 교육 ·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중경은 재정 · 경제 · 군사적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동경은 일본과 신라로 가는 해상 교통 및 외교적 역할을, 서경은 당과의 교섭을 위한 정치적 역할을, 남경은 신라와의 관계를 고려한 외교적 도성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발해의 5경은 저마다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는 계획된 수도였으며 당나라에 뒤지지 않으려는 황제국가 의식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발해강역고(渤海疆域考)』
「발해 5경의 성격과 기능」(한규철, 『발해5경과 영역 변천』, 동북아역사재단, 2007)
「발해(渤海)의 강역과 오경(五京)의 위치」(정영진, 『한국사론』34, 국사편찬위원회, 2002)
「발해 정치세력(渤海 政治勢力)의 추이 연구(推移 硏究)」(김종복,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2)
「유득공(柳得恭)의『발해고(渤海考)』분석(分析)」(정진헌, 『경희사학』18, 1993)
「발해 성지(城址)의 조사와 연구」(송기호, 『한국사론』19, 1989)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洋學報』36-4, 1954)
「滿洲の地理を論じて渤海の五京に及ぶ」(白鳥庫吉, 『史學雜誌』46-12, 1935)
『渤海史考』(鳥山喜一, 東京 奉公會, 1915)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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