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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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의 문신, 차천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9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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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차천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91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8권 4책. 목활자본. 정조(正祖)가 저자의 문집을 수집, 고정(攷定)하여 활자로 인출(印出)해 올리라고 명을 내리자, 홍양호(洪良浩)가 후손이 올린 ≪오세유고(五世遺稿)≫ 10여 권을 산정(刪定)해 8권으로 편차하여 1791년(정조15)에 평양에서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1909년 12세손 차일룡(車一龍)이 이미 간행된 원집과 함께 속집 4권 합 6책을 상주(尙州)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권말에 홍양호의 발문이 있다. 판본 외에 1058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필사본 《오산집》이 전한다.

권1∼4는 부(賦) 1편, 시 310수로, 각 체의 시가 실려 있다. 내용은 주로 권필(權韠), 이수광(李睟光) 등 당시 문인들과의 수창시와 승경(勝景)을 읊은 시, 춘첩자(春帖子)나 영상시(迎祥詩), 만시(挽詩) 등인데, 특히 중국 사신의 접대와 관련된 시가 많다.

권5는 서(序) 3편, 기(記) 4편, 발(跋) 2편, 서독(書牘) 3편, 잡저 3편, 소장(疏章) 2편, 비명 1편, 묘지명 1편, 제문 5편이다. 권6은 교서 2편, 고유문 1편, 계(啓) 2편, 가요(歌謠) 1편, 전(箋) 5편, 표(表) 4편, 상량문 4편, 인(引) 1편, 권선문 4편, 노포(露布) 1편이 실려 있다.

권7·8은 부록으로 <연성차씨삼세문장록 延城車氏三世文章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에는 세계도 1편, 할아버지 광운(光運)의 시 3수, 아버지 식(軾)의 시 4수와 신도비명 1편, 형 은로(殷輅)의 시 2수, 아우 운로(雲輅)의 ≪창주집 滄洲集≫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에도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다.

차천로의 문장은 웅건하고 기장(奇壯)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여송(李如松)이 왔을 때의 서격사한(書檄詞翰)은 차천로 등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차천로는 이여송이 본국에 돌아갈 때에 칠언배율 <송이제독일백운 送李提督一百韻>과 칠언율시 <송이제독백수 送李提督百首>를 지어 석별의 뜻을 나타냈다.

저자는 이 시에 대한 <송이제독시서 送李提督詩序>와 <송이제독시병인 送李提督詩幷引>을 지었다. 이것에 의하면 이 두 작품은 동시에 지어졌으며 만 하루만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들에 대하여 ≪소화시평 小華詩評≫에는 “장강(長江)과 대해(大海)가 쏟아져내리면 내릴수록 끝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이춘영(李春英)은 “차천로의 문장이 이규보(李奎報) 이후 일인”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차천로는 시문에 능하였다. 시는 절구보다는 율시를 잘 지었고 율시보다는 배율 등과 같은 장편에 능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허균(許筠)은 저자의 시에 대하여 “시는 문보다 못하다.”고 혹평하였으며, “그가 일본에 가서 지은 시가 1,000여 수에 이르지만 읊을 만한 것은 한 구절도 없다.”고 하였다.

다만, 명천에 있을 때에 지은 “아득히 멀리서 발해의 파도소리 들리고, 눈내리는 가운데 어둑어둑한 산이 보인다.”라는 시를 높이 평가하여, “이 시는 혼웅하여 전편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밖에 <희제기성벽상 戱題騎省壁上>·<추사시 秋思詩>·<제영월루 題詠月樓>·<송한석봉시 送韓石峯詩> 등의 시가 인구에 회자되었다.

문은 각체가 구비되었으나, 각체마다 지은 편수는 많지 않다.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은 글은 임진왜란관계 작품이다. <조총병게첩 祖摠兵揭帖>·<답평양연병천파총유광원도료게첩 答平壤鍊兵千把摠劉光遠屠料揭帖>·<파평양성왜적노포 破平壤城倭賊露布> 등이 있다.

이여송이 이 노포(露布: 봉함을 하지 않고 노출된 채로 선포하는 포고문)를 보고 그의 뛰어난 재주를 극찬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조정에 올린 글과 임금의 명을 내리는 글, 문학에 대한 생각이 나타난 글 등이 있다.

<안남국사신창화시집서 安南國使臣唱和詩集序>·<제지봉시권후 題芝峯詩卷後>·<시능궁인변 詩能窮人辨> 등은 저자의 문학관을 드러내주는 자료이다. <안남국사신창화시집서>는 이수광(李睟光)이 조천사로 연경에 두 번째 갔을 때에 그곳에서 만난 안남국의 사신과 창수한 시집의 서문으로 그 기연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시능궁인변>은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 또는 ‘시는 오히려 사람을 현달하게 한다.’라는 정반대의 설에 대하여 중도적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글이다.

차천로는 시란 재주의 높낮이에 따라 성정(性情)에서 발하는 것이지, 애써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궁달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시의 공졸(工拙 : 기교의 능란함과 서투름)은 그 분수에 따른 것이며, 명(命)의 궁달은 그 운명에 맡기는 것이라 하였다.

≪오산집≫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인의 문집으로 중요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의 사회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 규장각도서·장서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도서 등에 있다.

참고문헌

『소화시평(小華詩評)』
『국조시산(國朝詩刪)』
『한국한문학사』(이가원, 민중서관, 1976)
임준철, 「차천로 시세계의 연구」(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구본현, 「차천로의 시세계」(『한국한시작가연구』, 한국한시학회, 2003)
배주연, 「동악 이안눌 시문학 연구(東岳 李安訥 詩文學 硏究)」(이화여대 박사학위논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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