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룡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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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금동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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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개념
구름을 배경으로 나타낸 용의 문양.
내용 요약

운룡문은 구름을 배경으로 나타낸 용의 문양이다. 운룡도에는 다섯 가지 색깔의 용이 나타나는데 그중 황룡이 제일 많다. 민화에 보이는 운룡도는 모두 불교화된 용의 모습으로 여의주가 함께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용 문양이 완숙해지는 시기는 통일신라 시대이다. 각종 불구류나 사찰 건축의 장식물, 불탑의 조각상으로 운룡문이 많이 취급되었다. 현존하는 운룡도 중에 통도사 대들보를 단청한 「백룡도」가 대작이다. 화가 윤두서, 심사정 등의 운룡도도 남아 있다. 운룡문은 회화·건축 외에 도자기 문양으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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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구름을 배경으로 나타낸 용의 문양.
연원 및 변천

운룡(雲龍)의 출처를 찾아보면 『주역(周易)』 상경(上經)에 “운종용풍종호(雲從龍風從虎)”라 하여 그림이나 화제(畵題)에서 흔히 보는 ‘운룡풍호(雲龍風虎)’의 유래를 알 수 있다. ‘운룡도’에는 청·백·적·흑·황의 다섯 가지 색깔의 용이 나타나는데, 그 중 황룡이 제일 많이 나오고 그 다음이 청룡이다.

『금신칠살경(金神七殺經)』에서 오색룡(五色龍)으로써 오방신장(五方神將)을 삼았다고 한 점으로 미루어 민간신앙의 대상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 오색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민화(民畵)에 있어서는 오색룡을 믿고 있었던 일반적인 민간신앙이 중요하다. 자료로는 백룡도·적룡도·흑룡도가 다 보존되어 있다.

모든 용 그림에 여의주가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민화에 보이는 운룡도는 모두가 불교화된 용의 모습이다. 그리고 중국 고대의 원형에서 크게 진화된 양식이라고 믿어진다. 고대의 용에 달렸던 날개는 없어지고, 그 대신 영수성화문(靈獸聖火文)이 달려 있다. 그리고 비늘이 잉어비늘[鯉鱗]로 통일되어 있다.

민화에 나타난 용의 사상적 배경으로 직결되는 점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용은 모든 동물의 조상이라는 관념이다. 『회남자(淮南子)』에 “만물우모린개개조어용(萬物羽毛鱗介皆祖於龍)”이라 하였고, 이러한 관념은 자연스럽게 용의 만물지왕(萬物之王)의 위치를 제왕의 위치에 비유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천룡도(天龍圖)가 생겨나 궁전의 천장에 그려지고, 천룡호법관(天龍護法觀)에 의하여 불당에 자리잡게 되었다.

둘째로 용신(龍神)이 강우신(降雨神)이 되어 기우제(祈雨祭)를 위한 화룡(畵龍)으로 그려졌다.

셋째로 사신관(四神觀)에 의하여 용호도의 주인공이 되어 민간생활 속의 문배도(門排圖 : 문에 그림을 붙여 잡귀를 막기 위해 제작된 그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넷째로 사령(四靈)의 하나로서 용봉화(龍鳳畵)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러 가지 기능을 지닌 용 그림은 거의가 ‘운룡도’로 나타나 있다. 또 모양으로서 용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한대(漢代) 이후이다. 그러나 그 선형(先形)은 이미 은·주시대(殷周時代)의 훼룡문(虺龍文 : 짐승 모양의 측면의 무늬),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칠화채반(漆畵彩盤) 등에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낙랑(樂浪) 지역 출토 칠기(漆器)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된다. 이 밖에도 고분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각종 장신구와 마구(馬具), 그리고 금공용기(金工容器) 등에서 다양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그 형태적 특징에는 한대 미술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용의 형태가 완숙해지는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다. 이때에는 불교미술의 융성과 더불어 각종 불구류(佛具類), 즉 범종(梵鐘)의 종뉴(鐘鈕)와 요령(搖鈴), 당간지주(幢竿支柱)나 사찰 건축의 장식물, 불탑의 조각상으로 많이 취급되었다. 특히 서역문화(西域文化)의 영향으로 세련된 양상이 나타나며, 와당(瓦當)과 전(塼) 등에서 특성을 보여 준다.

현존하는 ‘운룡도’ 중에는 통도사 대들보를 단청한 「백룡도(白龍圖)」대작이 있다. 정통회화 속에는 조선초기의 안견(安堅), 석경(石敬)으로부터 후기의 윤두서(尹斗緖), 심사정(沈師正), 이인문(李寅文) 등 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남아 있다. 운룡문은 회화와 건축, 공예 이외에도 도자기 문양으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는 조선왕실의 각종 행사에서 사용되다가 후기에는 민간에까지 전파된 백자청화운룡문호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 민화로 제작된 작품이 상당수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운룡문 분석을 통해서 본 조선후기 백자의 편년체계」(방병선, 『미술사학연구』 220호,1998)
「부도에 나타난 운룡문에 대한 연구」(이예성, 『고고미술』 183, 한국미술사학회, 1989)
「용무늬의 조형적 연원과 그 분석」(김수석, 『공간』, 공간사, 197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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