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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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
화순 운주사
불교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사찰. 사적.
이칭
이칭
운주사(運舟寺), 약사사(藥師寺)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85년 04월 15일 지정)
소재지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 산3번지 외
목차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사찰. 사적.
내용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전하여지고 있다. 이 중 도선창건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영암 출신인 도선이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고, 선복(船腹)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곳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도력(道力)으로 조성하여 놓았다고 한다. 이 전설을 뒷받침이나 하듯이 절에서 멀지 않은 춘양면에는 돛대봉이 있다. 돛대봉에 돛을 달고 절에서 노를 젓는 형세라 한다. 또 절을 지을 때 신들이 회의를 열었다는 중장(衆場)터(일설에는 승려들이 장터를 이룰 만큼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가 멀지 않고, 신들이 해를 묶어놓고 작업하였다는 일봉암(日封巖)도 가까이에 솟아 있다.

절의 이름을 운주사(運舟寺)라 한 것은 풍수상 움직이는 배 모양의 땅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법당을 비롯한 석불과 석탑이 크게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었으나 18세기에 자우(自優)가 불상과 불탑을 수리하고 약사전을 중건하였다. 당시는 약사사(藥師寺)라고 불렀음을 각안(覺岸)이 지은 「능주운주동(綾州雲住洞)」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921년에 간행한 『도암면지』를 보면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 · 김여수(金汝水) 등 16명이 시주하여 중건하였음이 나와 있고, 최근에도 중창불사가 있었다.

현재 대웅전과 지장전 · 법성료 · 범종각 · 객실 · 요사채가 있으며, 비구니들의 수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에는 석탑 12기, 석불 70기만이 있다. 1980년 6월에 절 주변 일원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는 연화탑(蓮華塔)과 굴미륵석불(窟彌勒石佛) · 구층석탑을 비롯하여 대웅전 내에 있는 오층석탑 · 구형오층봉발탑(球形五層奉鉢塔) · 부부와불(夫婦臥佛) 등이 있다. 이 중 부부와불은 길이 12m, 너비 10m의 바위에 조각하였는데 남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이다.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다 세우려 하였으나, 미처 세우지 못해서 누워 있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이 절의 석탑과 석불은 동일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어 이름 없는 석공이 평생을 두고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전통사찰총서』7(사찰문화연구원, 1996)
『한국의 명산대찰』(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집필자
김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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