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악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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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의 번암집 중 유관악산기
채제공의 번암집 중 유관악산기
한문학
작품
조선 후기에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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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기행문.
내용

조선 후기에 채제공(蔡濟恭)이 지은 기행문. 순한문으로 기술되었고, 그의 문집인 ≪번암집 樊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그가 67세 되던 1786년(정조 10)에 관악산을 등반하고 쓴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하동(紫霞洞)에 들어가 쉬고 길을 떠나 가다가 불성암(佛性庵)에 도착한다. 다음으로 연주대(戀主臺)라는 높다란 대에 오르고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일암(遮日巖)이 있다.

옛날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세자의 위를 피하여 관악산에 와 있을 때 날마다 올라가 대궐을 바라보면서 임금을 그리워하던 곳을 연주대라 하였고, 해를 쬐는 것이 괴로워서 오래 머무를 수가 없으므로 조그만 차일을 치고 바위 귀퉁이에 앉아 있었으니, 이 바위를 차일암이라고 하였다 한다.

저자는 사방의 많은 봉우리들은 자잘해서 따질 것도 없고, 오직 저쪽 가에 싸인 기운이 아득하고 편편한 것은 하늘과 바다가 서로 이어진 것인 듯하나, 하늘로서 보면 바다요, 바다로서 보면 하늘이니, 하늘과 바다를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양의 성과 대궐은 마치 밥상을 대한 것과 같은데, 한 덩어리 소나무와 잣나무가 둘러선 것으로 보아 경복궁의 옛 대궐임을 알겠고, 양녕대군이 여기에서 서성거리면서 쳐다보았다는 것은 비록 백대(百代)가 지나간 뒤라도 그 마음을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또한, 저자는 지난날 그가 숭배하던 허목(許穆)이 83세의 고령으로 이 관악산에 올랐을 때의 그 젊음을 과시하던 모습을 상상하고 부러워한 나머지 이 산에 오를 것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 글은 관악산을 돌아보면서 느낀 감정을 진지하고도 그윽하게 표현하여 수필로서의 귀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번암집(樊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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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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