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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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 분깃문기
김무 분깃문기
가족
개념
임종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남기는 문서.
내용 요약

유서는 임종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남기는 문서이다. 자필로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나 때로는 말한 것을 가족이 받아 적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유서자의 서명이 필요하였다. 유서의 내용은 그 시대의 가치관, 종교, 가족제도 등에 따라서 달라진다. 조상에 대한 제사가 유서의 중요한 내용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유교가 생활 규범으로 일반화된 조선 시대부터였다. 오늘날에는 자필유서뿐 아니라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 다양한 형태의 유서, 유언이 나타나고 있다. 유서는 그 시대의 사회사 연구, 특히 가족제도·상속제도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다.

목차
정의
임종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남기는 문서.
내용

자필로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나 때로는 말한 것을 가족이 받아 적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유서자의 서압(署押)이 필요하였다.

그 내용에는 유서를 작성하게 된 동기, 죽은 뒤의 가내 여러 가지 일에 대한 부탁, 조상의 제사와 묘위토(墓位土) · 제위토(祭位土)에 대한 당부, 유서자 부부의 제사에 대한 당부 등이 있고, 끝으로 자녀들에 대한 재산분배의 내용이 있게 된다.

현존하는 유서 가운데 1429년(세종 11)에 작성된 김무(金務)의 분급문기(分給文記) 서두를 보면, 그의 증조부 김사원(金士元, ?∼1319)의 유서를 인용하여 자녀들에게 당부하는 글이 있다.

그 유서의 내용은 “뒤에 자손 가운데 자신에게 자식이 없다고 양자를 들이고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노비를 하루 아침에 가벼이 남(양자)에게 주거나, 관직을 바라고 노비를 권세가에게 뇌물로 바치는 자가 혹시라도 있으면 관가에 고소하여 그 노비를 빼앗고 가문에서 영원히 끊어버려라.”는 것이다.

이 유서에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노비를 계속 유지하라는 당부와 자식이 없더라도 양자를 들이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아직 주자학적 종법(宗法)이 수용되지 못하여 양자를 자식으로 보지 않고 남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양자를 들이는 것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노비)을 남에게 넘겨 주는 것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528년(중종 23)에 송진사가 딸들에게 남긴 유서는 천첩자(賤妾子)로 하여금 제사를 받들게 하는 것은 편하지 않으며 양자를 들이고자 하나 부인이 반대하므로, 죽은 아들 몫의 토지와 노비를 딸들에게 주고 자기 부부의 제사를 지내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또 조선 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자필유서는 세 아들에게 남긴 것인데, 1,600여 자나 되는 긴 글이다. 그 유서에서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내용은 각종 제사의 봉행과 제위토 · 묘위토의 배정에 관한 것이고, 토지 · 노비 등 남은 재산의 분배에 관한 것이다.

분배의 내용을 보면, 봉사조(奉祀條)로 논 7섬지기, 밭 10일갈이[日耕], 노비 11구(口)를 정하고, 묘위로 논 33마지기, 밭 3일갈이, 노비 10구를 정하여 놓고, 장자몫으로 노비 7구, 번답(反畓) 2섬지기, 밭 2일반갈이, 중자(仲子) 몫으로 노비 7구, 논 15마지기, 밭 2일반갈이, 계자(季子) 몫으로 노비 7구, 밭 15일갈이를 분급해 주고 있다. 봉사조 및 묘위를 제외하고는 균등분배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서의 내용은 그 시대의 가치관 · 종교 · 가족제도 등에 따라서 달라진다. 조상에 대한 제사가 유서의 중요한 내용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유교가 생활규범으로 일반화된 조선시대부터였다.

양자에 대한 인식도 유교적 종법제가 가족제도에 수용된 조선시대와 고려 이전시대와는 차이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양자를 들이기보다 딸 · 외손자 쪽을 가깝게 여겼다.

유서에서 자녀에 대한 재산분급도 시대에 따라 분급비율이 달랐다. 고려 말 조선 초에는 대개 자녀들에게 균등분배가 이루어졌고, 중기 이후에는 장자에 대한 우대가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일반 분재기(分財記)의 경우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유서에서는 유서자의 사정(私情)에 따라 특별히 어떤 자녀에게 재산을 더 준 경우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자필유서뿐 아니라 녹음테이프 · 비디오테이프 등 다양한 형태의 유서 · 유언이 나타나고 있으며, 거부(巨富)들의 유언내용은 재산상속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 유서는 그 시대의 사회사 연구, 특히 가족제도 · 상속제도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고문서연구』(최승희, 지식산업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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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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