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화원 징(澄)의 아들이다. 사과를 지낸 이명수(李明修)의 사위이며, 정근(正根)의 매부이다.
도화서(圖畵署) 화원으로 사과를 지냈으며, 1617년(광해군 9) 통신사행(通信使行)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627년이징(李澄)·김명국(金明國) 등과 함께 「소현세자가례반차도(昭顯世子嘉禮班次圖)」 제작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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