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

유교
인물
일제강점기 때, 『간재성리유선』, 『예의관보』, 『사례제요』 등을 편찬한 학자.
이칭
희경(禧卿)
현곡(玄谷)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3년(고종 30)
사망 연도
1961년
본관
고흥(高興)
출생지
전라북도 고창군
정의
일제강점기 때, 『간재성리유선』, 『예의관보』, 『사례제요』 등을 편찬한 학자.
개설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희경(禧卿), 호는 현곡(玄谷). 전북 고창(高敞) 출생. 아버지는 유기춘(柳基春)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병현(李秉賢)의 딸이다.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의 치욕으로, 전우를 따라 서해(西海) 고군산 외딴섬 왕등도(暀嶝島)·계화도(繼華島) 등지에서 근 20년간 갖은 고초를 극복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24년 고향에 돌아와 현곡정사(玄谷精舍)를 건립하고 전통의 도학을 보전하기 위해 후진 교육에 전념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시켰다. 유영선의 학문적인 입장은 한말의 심성론(心性論)에 있어서 주리론(主理論)의 입장을 비판하고, 성(性)은 스승이요 심(心)은 제자라는 ‘성사심제(性師心弟)’ 즉 성존심비설(性尊心卑說)을 제창한 전우의 핵심적 학설을 강조하여 철저히 계승 발전시켰다.

또한 그 성리설과 학문론을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하여 『간재성리유선(艮齋性理類選)』을 편집하였다. 유영선은 예학에도 합리적인 절충을 수행하여 『예의관보(禮疑管補)』와 『사례제요(四禮提要)』를 편찬하였으며, 유영선의 예설은 광범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유영선은 지조를 생명으로 삼아 조선시대 도학의 전통을 최후까지 보존하고 학문적 신념에 살았던 학자요 교육자이기도 하다. 유영선은 고창에 용암사(龍巖祠)를 건립하고 전우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그 후 이 용암사에 배향되었다. 편저로는 『담화연원록(潭華淵源錄)』·『구산풍아(臼山風雅)』·『오륜시편(五倫詩編)』·『규범요감(閨範要鑑)』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현곡집(玄谷集)』 32권 16책이 있다.

참고문헌

『현곡집(玄谷集)』
집필자
조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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