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경현(景顯). 자는 장경(長卿), 호는 졸재(拙齋).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의 손자로, 장령 유여(柳袽)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군자감정 홍세찬(洪世贊)의 딸이다. 할아버지 유성룡과 작은아버지 유진(柳袗)에게서 수학하였다.
일찍이 황간·진안 등지의 현감을 역임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는 안동지방의 의병장 이홍조(李弘祚)와 함께 활약하였다. 학문에 열중하여 사서오경과 제자백가에 능하였으며, 특히 성리(性理)·이기(理氣)·상수(象數)·천문·지리·예설 등에 통달하였다.
이기설에 있어서 주로 이황(李滉)의 이발기발설(理發氣發說)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이이(李珥)의 설을 반박하였으며, 예설에 있어서는 효종의 복상문제(服喪問題)에 송시열(宋時烈)이 의정(議定)한 기복제(朞服制)를 부인하고 3년설을 주장하였다. 안동의 화천서원(花川書院)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졸재집(拙齋集)』 14권 7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