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구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서 활동하며 사이토 총독 암살 및 일제기관 파괴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발각되어 체포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윤병구(尹秉球)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3년 3월 16일
사망 연도
1931년 2월 9일
본관
칠원(漆原)
출생지
충청남도 청양
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서 활동하며 사이토 총독 암살 및 일제기관 파괴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발각되어 체포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남도 청양 출신.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건너가 의열단원이 되었다. 1922년 의열투쟁의 임무를 띠고 국내로 잠입, 유석현(劉錫鉉) · 김지섭(金祉燮) 등과 함께 사이토[齋藤實] 총독의 암살을 기도하였다.

총독부 · 동양척식회사 · 조선은행 등을 폭파할 목적으로 먼저 자금조달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같은해 12월 23일 유석현 · 김지섭 등과 같이 서울 무교동에 사는 부호인 조선총독부 판사 백윤화(白允和)의 집을 찾아가 5만원을 요구하였으나 불가능하다고 하여 1만원을 내라고 하였다. 백윤화는 2000원을 약속했으나 거짓이었다.

그 뒤 25일 밤 유석현과 함께 약속된 자금을 받기 위하여 백윤화의 집을 찾아갔으나, 잠복중이던 일본경찰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시국표방강도죄로 중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는 가운데 혹독한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독립운동사자료집』1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동아일보』(1923. 2. 24, 2. 27, 3. 1)
『매일신보』(1923. 3. 1.)
집필자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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