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칭 윤선왕래상해조선공도장정(輪船往來上海朝鮮公道章程). 1882년 10월 1일 체결된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 제7조에 “조선에는 현재 병선(兵船)·윤선(輪船) 같은 것이 없으니 조선국왕으로부터 북양대신(北洋大臣)에 청하여 잠시 동안이라도 상국(商局)의 윤선을 파견하여 매월 정기적으로 왕래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총세무사(總稅務司) 묄렌도르프(Mllendorf,P.G. von)에게 명해 청국 총판상무위원(淸國總辦商務委員) 진수당(陳壽棠)과 이 조약을 의정, 조인하도록 하였다. 이 조약 결과 중국 최대의 기선회사이던 초상국(招商局) 소속의 기선이 매월 1회 상해(上海)와 조선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하게 되었다.
그 뒤 1884년 1월 다시 묄렌도르프와 진수상 간에 「조중윤선왕래합약장정속약(朝中輪船往來合約章程續約)」(별칭 招商局輪船往來合約續約)이 체결, 초상국의 윤선이 조선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나가사키(長崎)에도 취항, 왕래할 수 있었다.
이 조약에 의한 초상국 선박의 조선항로 개통은 중국의 무역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초상국은 한중 간 무역품 운송업을 독점하게 되었고, 중국은 이를 통해 영국산 면제품을 비롯한 자본주의 열강의 공산품을 재수출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또한, 중국이 조선에서의 무역 경쟁에서 일본보다 한때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조약이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