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가의 유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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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증(尹拯)의 유품과 윤증가(尹拯家) 종부에게 물려온 후손의 유품.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윤증(尹拯)의 유품과 윤증가(尹拯家) 종부에게 물려온 후손의 유품.
개설

1970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 숙종대의 학자인 윤증이 사용하던 물건들과 후손들의 것으로 2차에 걸쳐 총 53점이 지정되었다. 1970년 12월 19일 1차로 지정된 유물은 모두 11점으로 상투관, 빗, 빗치개, 살쩍밀이, 신 1켤레, 신 1짝, 합죽선 1개, 백목화 1켤레, 월자 1개, 첩지 1개, 비녀 1개 등이며, 2004년 9월 25일 추가로 지정된 유물은 모두 45점으로 회화자료 14점, 복식자료 아얌 1점, 생활자료 32점 등이다. 논산명재고택(論山明齋古宅)과 유봉영당(酉峰影堂)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내용

복식자료는 모두 11점으로 1차 지정된 10점과 추가 지정된 아얌 1점이 있다. 이 중 윤증의 유품은 상투관·빗·빗치개·살쩍밀이 각 1점, 신 2쌍(1쌍은 외짝), 백목화(白木靴) 1쌍이며, 종부에게 내려진 후손의 유품은 댕기가 부착된 월자 1점, 인모가 부착된 첩지 1점, 비녀 1점, 아얌 1점이다. 상투관은 높이 6.6㎝, 직경 6㎝로 목재로 되었으며, 정상이 둥글고 앞뒤로 네 줄의 선이 골이 지게 조각되어 있다. 양옆은 트여 있으며 상투비녀를 꽂도록 되어 있다. 빗은 목재이며 각형(角形)이고, 등 부분이 약간 휘어져 곡선으로 처리되었으며, 빗살이 성근 상투빗이다. 빗치개와 살쩍밀이는 원형이 많이 파손되어 형태만 남아 있다. 신발은 3종류가 있는데 백목화가 1점, 가죽 단화가 2점 있다. 백목화는 국상 중 예복에 신었던 것으로 피혁과 직물(무명)로 되어 있으며 길이 31㎝, 높이 34㎝이다. 가죽 단화 2점은 모두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1점은 한 짝이 소실되어 나머지 한 짝만 남아 있다. 아얌은 흑색으로 머리 윗부분은 규칙적으로 누벼주고 아래 부분은 흑색 모피를 대고 안으로 여러 겹의 장지(壯紙)로 심을 넣어 만들었다. 뒷면에는 폭 19.8㎝, 길이 126㎝의 드림이 달려있는데 장식은 이미 소실되었고 붙였던 흔적만 남아 있다.

회화자료는 2004년에 추가 지정된 것으로 14점이다. 명재선생유상(정면) 1점, 명재선생유상(측면) 1점, 윤증반신초상(정면) 1점, 윤증반신초상(측면) 1점, 영당기적 1점, 역대군신도상 1점, 초상초본 8점이 있다. 명재선생유상은 정면과 측면의 전신상으로 족자로 꾸며져 있다. 영당기적(影堂紀蹟)은 3차에 걸친 초상 개모의 제반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 것이며, 초상초본은 크기와 종이질이 다른 측면초상화 초본이다. 역대군신도상첩(歷代君臣圖像帖)은 중국의 성군·명현과 우리나라의 명현들을 백묘(白描)로 그린 초상초본을 모은 초본첩이다.

생활자료는 모두 33점으로 1차 지정된 합죽선 1점과 추가 지정된 인장 28과(顆), 벼루 1점, 치미추 1점, 혼천의 1점, 해시계 1점이다. 합죽선은 대나무와 한지로 되어 있는데, 선골(扇骨)에 매듭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상당히 늙은 대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장은 모두 석제이며 윤선거(尹宣擧)로부터 윤하중(尹昰重)에 이르는 약 300년간(11대)의 인장이 포괄되어 있다. 이 중 윤증의 인장은 서수(瑞獸)를 뉴(鈕)에 조각하였고, 윤하중의 인장 표면에는 연잎을 양각하였다. 벼루는 가로 16㎝, 세로 20.7㎝의 오석으로 만들었으며, 사각벼루로 앞면은 장생문연(長生紋硯)이고 뒷면은 일월연(日月硯)이다. 치미추는 꿩의 깃털을 모아 만든 빗자루를 말하는데, 종가에서는 윤증이 사용하였던 빗자루로 전해진다. 혼천의의 크기는 높이 31.3㎝, 밑면 33×33㎝, 지름 27.5㎝이며, 해시계의 크기는 가로 36.5㎝, 세로 45.5㎝, 두께 2.5㎝이다.

의의와 평가

윤증가의 유품은 한 집안의 대를 이은 유물로 착용자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자료도 방대하여 민속학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 1 -민속편-』(문화재청, 2005)
『문화재대관(文化財大觀) -중요민속자료편(重要民俗資料篇) 하(下)-』(문화재관리국,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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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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