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릉 ()

조선시대사
유적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도조|태조
소재지
함경남도 함흥시
내용 요약

의릉(義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이다. 도조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이춘이며, 태조 즉위 후 도왕 의릉으로 추존되었다. 의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의릉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다.

정의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
건립경위

도조(度祖)는 조선 태조(太祖, 1335~1408, 재위 1392~1398)의 할아버지로, 이름은 이춘(李椿, ?~1342)이며, 비는 경순왕후(敬順王后) 문주박씨(文州朴氏)이다. 부모는 익조(翼祖) 이행리(李行里, ?~?)와 정숙왕후(貞淑王后) 등주최씨(登州崔氏)이며, 아들은 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 1315~1360)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도왕(度王)으로 주1하고, 의릉으로 주2하였다.

의릉의 명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북도 8릉과 마찬가지로 태종 재위 기간인 1400년대 초 왕릉의 모습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변천

1393년 의릉 표석을 건립하였으며, 조선시대 내내 지속적인 관리를 하였다. 1901년에는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이 주3 표석을 세웠으며, 의릉뿐만 아니라 덕릉(德陵), 안릉(安陵), 지릉(智陵), 숙릉(淑陵), 순릉(純陵), 정릉(定陵), 화릉(和陵)에도 표석을 건립하고 1906년에 비각(碑刻)을 건립하였다.

형태와 특징

의릉은 상중하계(上中下階)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계에는 주4을 두른 봉분 앞에 주5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주변에는 주6주7을 배치하고, 중계에는 장명등(長明燈), 주8주9, 하계에는 주10과 석마가 건립되어 있다.

의릉 주11은 능 아래 15보, 주12은 정자각 남쪽 110보, 비각은 홍살문 밖 20보, 주13은 홍살문 서쪽 20보에 있다.

금석문

1906년 건립된 비각 안에는 1393년과 1901년에 건립된 의릉 표석 2기가 있다. 1393년에 건립된 지릉 표석은 앞면에 ‘도왕의릉(度王義陵)’, 뒷면에 ‘홍무이십육년시월일립(洪武二十六年十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1901년에 건립된 고종 어필 표석에는 앞면에 ‘대한도조대왕의릉(大韓度祖大王義陵)’이라는 전서(篆書)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주14가 있다.

의의 및 평가

의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다른 북도 8릉과 마찬가지로 15세기 초에 왕릉의 형태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병풍석에 난간석(欄干石)이 없는 것이나 주15이 설치되지 않은 점 등은 15세기 왕릉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현재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다.

참고문헌

원전

『북로능전지(北路陵殿誌)』
『춘관통고(春官通考)』
주석
주1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던 일.    우리말샘

주2

죽은 뒤에 관위(官位) 따위를 내림.    우리말샘

주3

임금이 손수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주4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주5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6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주7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주8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주9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주10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주11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주12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주13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주14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주15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집필자
김민규(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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